사업을 영위하여 이익을 추구하는 조직인 기업. 그들은 이익을 위해 다양한 전략을 추구한다. 대기업이 파견, 사내하청, 용역, 일시대체 등과 같은 간접고용 형태로 노동자를 활용하는 이유는 일시적 수요에 대응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 비용절감이 가장 큰 이유이며 고용을 조정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원하청간 불평등한 관계를 이용하여 직접고용의 위험요인을 전가하는 대신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간접고용을 이용한다. 사내하청은 법적으로는 ‘도급’의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사외하청과 달리 동일한 현장에서 원청 사업주가 제공하는 시설·설비를 이용하므로 하청업체가 아닌 원청업체가 하청노동자의 지휘·감독의 실질적 권한을 가지고 노무관리를 할 수 있는 편리한 방편이다.
노동자에 대한 ‘고용’은 하청업체가, 실제적인 ‘사용’은 원청업체가 함으로써 고용, 임금 등 근로조건에 관한 책임과 산업재해 예방과 사고 후 책임의 법적문제까지 하청업체에 전가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불법파견 및 사내하청 등 간접고용을 증가시키는 것은 기업의 입장에서 뿌리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이다. 이런 기형적인 고용형태는 원청업체 사용자와 하청업체 노동자간의 분쟁의 원인이 된다. 노동자 안전보건의 문제에 있어서도 위험은 원청이 만들고 책임은 하청이나 노동자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모순을 만들고 있다.
대규모 사업장 노동자 5명 중 1명 사내하청
국가 전체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규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어떤 지표에도 사내하청을 따로 분류하여 집계하지 않을 뿐 아니라 이를 관리하고 책임져야할 노동부조차 조사 후 발표하지 않거나 부정확한 기준으로 부분적 조사에 그치고 있다. 일부 연구내용을 인용하자면 자동차산업 사내하청 노동자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다가 2007년 이후 감소하는 추세이고 조선산업의 경우 9대 조선소의 직영인력은 2001년 54,265명에서 2008년 63,279명으로 9천여 명 증가한 데 반해, 사내하도급 인력은 2001년 32,417명에서 2008년 71,586명으로 3만 9천여 명 증가해 8년 동안 두 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확인되었다.(그림1. 그림2)
[그림 1] 자동차산업 원청 및 사내하청업체 상시 노동자수 현황
[그림 2] 조선산업 원청 및 사내하청업체 상시 노동자수 현황
조선산업의 경우에는 이미 선박 생산의 6-70% 가량을 사내하청이 담당하고 있으며, 자동차업종과 달리 대부분 사측과 협조적인 원청 정규직 노조에서는 사내하청 활용에 대해 별다른 저항이 없으며, 사업장 내 정규직 노동자들이 고령화되고 있는 가운데서 힘든 공정이나 업무들을 사내하청에게 떠넘기는 것에 대해서 거부감이 거의 없다.
2010년 1월 노동부가 민주노동당 홍희덕 의원에게 제출한 ‘사내하도급 현황’에 따르면 2008년 고용보험에 등록된 300명 이상 사업장 963곳을 조사한 결과 노동자 168만5천995명 가운데 21.9%에 해당하는 36만8천59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업종별로 사무·판매·서비스업의 사내하청 노동자가 12만2천682명으로 가장 많았다. 그 뒤를 조선업(7만9천160명), 철강(2만8천912명), 전기·전자(2만7천124명), 자동차(1만9천541명)가 이었다. 원청 대비 하청 노동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업종은 조선으로 55%에 달했으며 이어 철강(41.5%), 화학(20%), 기계·금속(15.2%) 순이었다.
이어서 2011년 11월에 노동부가 자동차(5개소), 조선(5), 철강(5), 전자(7), IT(5)업종에서 사내하도급 노동자를 다수 활용하고 있는 사업장 29개소를 선정하여, 조사한 “사내하도급 실태점검 결과”에서는 29개 대형사업장에 787개 하도급업체 노동자 79,298명이 근무하고 있고 이는 원청노동자 197,969명의 40.1%에 달한다. 300인 이상 사업장 기준으로 33만 명가량인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 조사는 잇따른 대법의 현대차(울산) 사내하청 판결과 같은 법원의 판결취지를 무시한 채 잘못된 기준에 의한 분류이며 노동계가 요구한 전수조사가 아닌 일부 사업장만을 대상으로 하는 것으로 국내 사내하청 노동자의 실태를 그대로 반영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산업인 자동차, 조선, 철강, 전자 등의 큰 기업에서는 사내하청이 보편적이며 그 규모도 원청 노동자수에 비해 적지 않은 비율이고 추산 하청노동자의 수도 어마어마한 규모임은 확실하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건강은 어떠한가?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동조건은 열악하다. 사내하청의 경우 업무에 대한 지시에 원청이 직접 관여한다. 위험작업에 대한 원청 노동자의 저항을 줄이고 위험에 따른 비용도 절약할 목적으로 원청 사업주는 원청 노동자들이 기피하는 힘들고 위험한 공정에 사내하청 노동자를 투입한다. 하청 노동자는 거부할 수 없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안전보건과 관련된 작업설비는 원청사업주의 소유이며, 작업공정과 작업방식의 결정도 원청 사업주가 하지만 법적으로 하청노동자의 안전보건 책임을 하청업주에게 지우고 있어 원청사업주는 하청노동자의 안전보건에 거의 책임을 지지 않는다. 사내하청으로 위험의 이전을 원하는 원청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원청 노동자의 반밖에 안 되는 월급에 위험하고 강도 높은 일만 주로 한다면 사내하청 노동자의 건강은 어떠할 것 같은가? 추락·협착·질식 등의 위험이 따르는 위험한 작업은 모두 하청 노동자의 몫이라면 여기서 발생하는 재해수준은 어느 정도일 것 같은가? 감독청인 노동부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을까?
최근 언론이 인용한 노동부 자료에 의하면 2007년 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조선업에서 발생한 사고성 중대재해 76건 중 사내하청에서 발생한 것이 62건으로 전체의 81.5%나 된다. 원청 대비 사내하청의 중대재해 발생률도 4.42배나 된다. 같은 기간 국내 7대 조선소에서 발생한 중대재해 31건 중 27건(87%)이 사내하청에서 발생했다. 7대 조선소의 경우 원청 대비 사내하청의 중대재해 발생률이 무려 6.75배에 달했다. 이는 원청 노동자에 비해 사내하청 노동자 수가 많은 국내 조선업의 현실을 감안해도 매우 높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대우조선해양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 4명 중 3명이 사내하청 소속이고,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SPP해양조선(각 1명)에서 발생한 산재 사망자도 사내하청 노동자다.
중대재해는 그나마 신고라도 되지만 어지간한 산재는 고용상 불이익이 따를 것을 우려해 아예 신고조차 않는 것이 현실이다. 조선과 자동차 산업 일부 사업체에서 원하청간 재해율을 살펴보았을 때, 원청 노동자의 재해율이 사내하청 노동자의 재해율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공통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일부 지표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 노동자들보다 재해율이 높지 않은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실제 동일한 사업장에서 상대적으로 힘든 일을 하고 있는 하청노동자들이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야 정상이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재해율이 왜 원청의 노동자들보다 낮게 나타나고 있는가?” 이는 사업장 내 위험이 사내하청 노동자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크지만 사내하청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원청에서 사내하청업체에게 산재를 은폐하도록 강제하는 구조적 압력을 받는다. ‘산재 삼진아웃’으로 인한 사내하청업체 퇴출을 막기 위해 사고 발생시 산재처리보다는 공상을 선호하게 된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의 입장에서는 산재처리보다는 공상처리가 경제적으로 훨씬 합리적인 선택임과 동시에 산재처리로 예상되는 불이익을 굳이 감수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으로 산업안전보건 교육과 노동조합 역량의 차이로 인해 정규직의 경우 산업안전보건 제도를 상대적으로 잘 활용하고 있는 반면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에 비해 노동부의 관리·감독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2006년부터 조선업종에 한해 ‘자율안전관리제도’를 도입해 시행 중이다. 지정된 자율안전평가서식에 맞춰 사업장별로 노사가 산업안전 수준을 자체 평가하고 이를 노동부가 검증하는 제도다. 그러나 ‘자체 평가’ 과정에서 노조가 배제되고 사측이 허위사실을 기재하는 등 산재를 은폐하는 도구로 전락했다는 것이 노동계의 지적이다. 자율안전관리제도로 인해 국내 주요 조선업체들이 노동부의 감독을 면제받으면서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산업재해의 위험지대에 방치돼 있다.
조선산업 원청 및 사내하청업체 사고사망만인율 비교(2005-2009)
자동차산업 원청 및 사내하청업체 재해율 비교
조선산업 원청 및 사내하청업체 재해율 비교
사내하청 노동자 보호 ‘권고’뿐인 가이드라인
2011년 7월 정부가 사내 하도급(하청)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가이드라인 내용 대부분이 “노력한다”로 돼 있다. 이를 지키지 않았을 경우 강제할 수단이 없다는 얘기다. 원사업주에게 “사내 하도급 노동자가 산업재해 위험이 있는 장소에서 작업을 할 때에는 산업재해 예방을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 라고 산안법 29조 2항을 다시 한 번 반복하고 있을 뿐 구체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조치하란 것이지 언급이 없다. 그냥 공무원들의 실적용 일뿐 노동자 보호를 위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노총도 성명을 통해 “노동현장의 현실과 노동자들의 고충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가이드라인은 하나마나 한 잔소리에 불과하다”라며 “사실상 위장도급에 불과한 사내하청을 폐기시키고 동일노동 동일가치, 동일사업장 동일고용을 위한 사내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구시대 노동법 정비가 필요하다
원하청관계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 법적 분쟁이 발생하였으나, 노동법은 여전히 개별 정규직 노동자와 사용자의 관계만을 그 규율대상으로 하고 있다. 원하청도급 관계는 3면적 당사자 관계로서의 특성을 가지고 있는 원청사용자와 하청노동자 사이에 별도의 근로계약관계가 존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근로계약관계의 당사자와 동일하다고 평가할 수 있는 근로실태가 존재할 경우에 이에 대한 법리 해석은 달라져야 한다. 최근의 대법원 판결에서도 이러한 면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지루하고 힘겨운 법원의 판결에 의존하기보다 관련 법령의 제정비야 말로 사내하청 노동자 보호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직접적인 고용계약이 없는 원청 사업주도 노동자 산재에 대한 연대책임이 있다.
파견노동자가 작업 도중 당한 재해에 대해서도 사용사업주도 ‘계약상’ 배상할 책임이 있다는 판결이 나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피고 A사는 원고와 직접적인 고용계약은 하지 않았지만 파견사업주인 B사와 노동자 파견계약이 포함된 법률관계에 의해 최씨의 노무를 지배.관리한 만큼 실질적인 사용자로 안전배려 의무가 있고,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만큼 계약상 손해 배상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파견사업주인 B사는 파견노동자가 작업장에서 안전하게 작업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신입사원에 대한 안전교육을 실시하거나 사용사업주인 A사가 안전교육을 실시하도록 조치해야 하는데 이 의무를 다하지 않은 만큼 배상의 책임이 있다”고 덧붙였다. 파견업체와 원청 회사가 공동의 책임이 있음을 인정한 결과이다. ‘파견계약’이라고 명시하고 있지만 사내하청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가능한 대목이다. 직접적인 고용계약이 없는 원청 사업주도 노동자 산재에 대한 연대책임을 지도록 입법화가 필요하다. 물론 원청에서 사내하청업체에게 산재를 은폐하도록 강제하는 구조적 압력을 더 가할 수도 있지만 노동자가 별로 힘이 없는 하청보다는 힘있는 원청을 상대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다는 의미에서 필요하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
산업재해에 대한 보상 뿐만 아니라 근본적인 사내하청 노동자의 보호를 위해서는 우선 비정상적인 ‘파견’, 사내하청제도를 없애고 정규직화를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위험의 전가의 유혹을 뿌리채 뽑아 버리는 것이 바로 정답이다. 모든 문제는 발생한 원인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그 다음에 노동자들에 대한 안전보건교육이나 작업장 안전조치 강화가 의미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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