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나누기
일본 비정규직 노동운동에서 배운다
전수경 / 노동건강연대 상근활동가
일본 비정규노동운동의 활동가들을 인터뷰하여 엮어낸 『만국의 프레카리아트여 공모하라(2012, 그린비)』를 읽고 있습니다. 도쿄에서 ‘프리타 전반노동조합’의 활동가로 일하는 야마구치 모토아키의 이야기가 깊은 인상을 주었습니다.
그 노동조합은 조합원이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상담을 오고 조합에 가입하기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노동조합 규모는 100명이 조금 넘는다고 합니다. 노동조합의 규모에 대해서 200명 300명은 너무 많다, 소통이 어렵다고 하면서 소통하기에는 30명 40명 정도의 조직이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한답니다. 30명 40명 조합원을 가진 노동조합이 파출소의 숫자만큼 늘어나고 그 노동조합이 네트워크로 소통하면 좋겠다고 합니다.
이 노동조합은 상근자도 두고 있지 않습니다. 활동을 책임지는 운영진은 있지만 간부들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서 노조활동을 합니다. ‘직원을 두면 직원의 생활을 지탱해주기 위한 운동이 됩니다’.
‘프리타 전반노조’는 활동자체가 사회운동이 되는 활동을 지향하기 때문에 노동상담이나 집회 만이 아니라 2명이상의 찬성이 있을 때는 다양한 이벤트를 열수 있다고 합니다.
2003년에서 2004년 사이 4~5명이 모여서 시작했다는 노동조합은 조금씩 조합원이 늘어나 100여명이 넘는 조직이 되었습니다. 꽤나 몸이 무거운 조직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활동가들의 유머와 여유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노동조합 경계너머를 보기에 여유가 있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일을 하는 사람, 일과 실업을 반복하는 사람, 은둔형외톨이처럼 생활이 불안정한 사람들이 다양하게 섞여 있다 보니 노조의 고전적인 상에 연연하지 않고 다양한 사회문제에 연대하고 생활의 어려움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 같습니다.
이번 여름호를 준비하면서 안산의 이주노동자 공동체를 찾아갔는데요, 기존의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와는 만들어진 배경도 달랐고, 여전히 형성중인 공동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노동운동 시각에서 이주노동자 상담활동을 하고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단체와도 다르고, 종교단체가 인도적 시혜적 관점으로 운영하는 단체와도 달랐습니다.
독립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이 이주노동자들의 영상작업을 교육하기 위해 안산에 사무실을 얻었고, 미디어에 관심있는 노동자들이 하나 둘 모이면서 이주노동자가 겪는 부당함, 인권침해를 해결해야 할 요구가 생겼습니다. 상담도 하고 사장에게 근로감독관에게 전화도 하고 싸워가면서, 다큐멘터리 감독은 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에 점점 많은 시간을 들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합니다. 이제 도움 받은 이주노동자의 친구의 친구의 친구까지 찾아오게 되었으니까요. 자연스럽게 사무공간이 아닌 생활공간이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문제가 해결되어도 발길은 이어집니다. 미등록노동자가 가방을 싸들고 은신처 삼아 들어오기도 하고, 등록노동자들은 직장을 옮겨야 하는 공백기에 짐을 싸서 오기도 합니다. 모이면 십시일반하여 고향의 요리를 해먹고, 열대야 때문에 잠 못 이루던 올해 여름에는 털털거리는 승합차에 부대끼며 동해바다까지 달려가기도 했답니다.
이렇게 급박하고 분주한 공동체를 운영하면서도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으로서의 정체성은 더욱 단단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카메라에 비추이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발언하는 사람으로서 위치를 찾아야 인권도 찾을 수 있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장기투쟁 사업장 노동자들에게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출발은 노동문제 해결이지만 투쟁이 길어지면서 끈끈한 공동체가 되어가고 쟁의가 정리된 후에는 연대하면서 맺었던 사회운동과의 인연을 발전시키면서 폭넓은 시야를 가진 활동가로 성장합니다.
오래된 노조 안정적 노조에서 일하는 활동가와는 다른 에너지를 뿜는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비정규직노동자의 노조운동도 정규직노조의 운영원리와 투쟁방식을 고정된 값으로 놓고 따라가는 것은 이제 한계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프리타노조’의 야마구치 활동가는 조합에 가입하는 비정규직노동자에게 이렇게 말해준다고 합니다. ‘조합에 들어와서 다른 사람의 일을 당신이 돕는 동안에 당신 일도 다른 사람이 도와준다’. 싱거운 말 같은데, 평범한 이야기인데 새롭게 들립니다. 서로 도와줘야 같이 살 수 있고 서로 도와줘야 이길 수 있을 테니까요.
시야는 넓게 가지면서도, 유연한 조직운영으로 사회에 신선한 문제의식을 던지는 작은 단체와 노동조합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