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기록하고 되짚다
메탄올 세 가지 키워드3 – 산재보험
갑질 하는 산재보험
임준 / 노동건강연대·서울시립대 도시보건대학원 교수
이중삼중의 제약을 만들어놓은 산재보험, 사회보험 맞나
노동자가 직업과 관련하여 질병, 손상이 발생하여 산재보험을 신청한 후 승인을 받은 경우, 산재보험은 재해노동자의 치료비를 부담할 뿐 아니라 소득보전을 위해 휴업급여를 제공해준다. 그 수준은 현재 평균보수월액(임금)의 70% 정도이다. 그런데 치료비 보장범위 설정에서 건강보험 방식을 따르다보니, 의료비에서 본인부담이 발생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재해 이후 실질소득 감소와 겹쳐, 빈곤층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발생한다. 특히 저임금의 소규모 사업장 노동자들은 맞벌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한 사람이 다치면 배우자 간병 때문에 가계의 실질 임금이 대폭 줄어들 수 있다. 더욱이 대부분의 중소 사업장은 일부 대기업처럼 단체협약에서 산재 이후 소득 보전에 관한 별도의 규정을 두지 않고 있다. 따라서 산재에 따른 가계소득의 급격한 감소를 충분히 막을 수 없다.
치료가 종결된 후에도 더 큰 문제가 기다리고 있다. 산재보험 제도는 장해급여가 있어서 장해등급 판정에 기초하여 장애로 인한 소득 손실을 보상해주고 있다. 하지만 장해등급 판정 기준이 현실에 맞지 않고, 직장을 구하기 어려울 정도로 중증 장애가 발생한 노동자조차도 보상 수준은 최저 생계를 꾸려나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이처럼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재해노동자가 적절한 치료와 재활 서비스를 제공받고 직장, 사회로 복귀하는 것을 가로막는 주요한 원인이다. 피해 당사자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초래되고 있다. 그런데 산재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가 해결되지 못하는 데에는 건강보험의 취약한 보장성 문제가 한 몫을 하고 있다. 의료비 보장만 하더라도 산재보험의 급여범위가 건강보험의 급여를 준용하기 때문에, 건강보험의 비정상적인 비급여 구조는 산재보험에서도 그대로 반복된다. 또한 건강보험은 의료비만 보장할 뿐 소득손실에 대한 보장 기능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러다보니 산재보험에서 상병수당인 휴업급여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즉, 건강보험이 산재보험의 보장성 강화를 가로막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낮은 보장성이라도,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는 노동자는 그나마 행복한 편에 속할지도 모른다. 법률적으로는 5인 미만 사업장까지도 적용되지만, 아직까지 농업 등 업종별로 산재보험을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많다. 또한 비공식부문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의 상당수는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며, 동일한 재해 위험을 안고 있는 자영업자들도 적용을 받지 못한다. 더욱이 특수고용 지위에 있는 노동자들의 다수는 실질적으로 사업주에 고용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1인 사업자로 등록되어 있다는 형식 논리로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경제활동 인구의 50% 이상은 경제활동 과정에서 질병과 손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치료비에 대한 보장성도 낮고 휴업급여도 없는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 산재보험제도의 존재 이유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이더라도 모두가 산재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산재보험은 건강보험과 달리 사업주의 자진 신고에 의하여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을 정한다. 또한 산재 보험료를 사업주에게 부과하고 있어서 전체 취업자 중 실제 적용 대상이 되는 노동자의 비율은 매우 낮다. 물론 사업주가 신고를 하지 않고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았더라도, 일단 재해가 발생하면 재해노동자의 신청으로 적용을 받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사업주에게 미납한 산재보험료를 한꺼번에 납부하도록 한다거나 행정 처분을 하기 때문에, 사업주는 이러한 불이익을 피하기 위하여 산재 은폐를 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주로 이로 이러한 상황에 놓인다. 산재 적용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만 산재보험에 가입해주지 않는 사업주가 많다. 이러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이 산재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조차 몰라서 아예 신청을 하지 않거나, 사업주가 산재 신청을 꺼리기 때문에 해고당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산재 신청을 피한다. 이 정도면 산재보험제도가 존재할 이유가 없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산재 신청을 한다고 해서 또 모두 혜택을 받는 것은 아니다. 노동자가 산재 적용을 받기 위해서는 본인 또는 보호자가 산재보험 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 신청을 하게 되는데, 급여 혜택을 받으려면 승인 절차를 밟아야 한다. 즉, 재해와 업무 간의 인과관계를 본인이 입증해야 산재로 인정을 해준다. 이처럼 사전승인 절차가 있다는 점, 업무 관련성에 대한 입증을 재해노동자가 직접 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산재로 인정해 주는 기준이 매우 협소하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실제 발생하는 재해의 10% 정도만이 산재로 인정받고 있다. 정부와 보험자 입장에서 보면 단기적으로 보험 재정을 절감할 수 있는 효율적인 제도설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재보험이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으로서 제 기능을 하지 못함으로써 장기적으로는 사회 전체적으로 질병 부담을 증가시키고 건강보험 재정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노동자에게 쉬운 제도로 산재보험 바꿀 수 있다
그렇다면 산재보험이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우선, 산재 요양을 받기 위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승인을 받아야 하는 사전승인절차를 없애고 별도의 절차 없이 재해노동자가 산재보험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재해노동자가 직접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에게 산재신고 의무를 부과해야 한다. 그리고 의사가 재해노동자를 만나는 최초의 시점에서 산재보험과 건강보험을 구분할 수 있도록 합리적 기준을 개발하고 이에 따라 산재보험을 적용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하려면 모든 의료기관이 산재보험의 당연 지정 의료기관이 되어야 한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과 재해노동자 간에 주요한 갈등 요인이었던 자문의 제도와 직업병 인정기준도 폐지해야 한다.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도가 마련되면 산재보험의 청구와 수급 절차가 대폭 간소화하여 재해노동자의 접근성을 비약적으로 높일 수 있을 것이다.
둘째, 비정규노동자, 이주노동자, 소규모사업장 노동자, 서비스 부문 노동자 등 실질적으로 산재보험의 적용에서 제외되어 있는 노동자를 모두 포함하는 방향으로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처럼 사업장 단위로 보험료를 부과하고 징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건강보험 직장 가입자처럼 개별 노동자의 정보에 기초하여 개별 노동자 단위로 보험료를 부과, 징수해야 한다. 더 나아가 산재보험에서 배제되어 있는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자부터 산재보험 적용을 실질적으로 확대하고, 비공식 부문 노동자, 농민 등 자영업자 등으로 적용 범위를 단계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셋째, 산재보험 급여의 보장성을 높여야 한다. 명백하게 치료와 상관없는 일부 항목만 비급여 항목으로 정해놓고 치료, 재활, 요양 중에 발생하는 모든 비용을 요양급여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 휴업급여의 경우도 현행 평균임금의 70%를 지급하는 원칙을 탄력적으로 적용하여, 전체 노동자의 평균 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은 산재노동자의 경우는 휴업급여를 임금수준에 따라 70~100%로 확대하여 임금 수준이 낮은 영세사업장 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 위협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중증장애, 저소득 산재노동자의 소득보장이 현실화되도록 장해보상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재해노동자의 기능 손실 정도를 전혀 파악할 수 없는 현행 장해등급판정 체계를 개편하고 장해급여비를 현실화해야 한다. 특히 중증장애인과 산재이전 직장의 보수가 낮은 재해노동자의 경우는 산재 후에 급격한 소득 상실이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보전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넷째, 치료부터 직장 및 사회복귀까지 전체를 포괄하는 재활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산재노동자가 산재요양기관에서 치료를 받는 첫 시점부터 재활치료계획을 의무화하도록 해야 하고, 산재노동자의 특성에 맞는 직업재활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서 재활 관련 시설 및 인력 등 재활을 강화하기 위한 기본 인프라를 갖추어야 한다. 최종적으로는 직업 복귀가 중요하기 때문에 이것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되어야 한다. 결론적으로 산재노동자에 대해 산재발생 시점부터 직업복귀에 이르는 전 과정이 체계적으로 관리될 수 있도록 정책이 개발되어야 한다.
다섯째, 사회연대성에 기초하여 재원조달체계를 개혁해야 한다. 산재 위험의 대부분은 대기업에 의해 촉발되지만, 그 위험은 원하청 관계, 용역/외주/파견 등을 통해 중소기업에 전가된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재해율이 높아지고 산재보험료를 많이 부담하게 되는 불공평한 차등보험요율 제도를 반드시 폐지해야 한다. 무엇보다 영세 소규모 사업장의 산재보험요율이 더 높아 부담의 역진성이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다음으로 사업주의 부담 능력이 떨어지는 소규모 영세사업장에 대한 산재보험료를 정부가 일부 지원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 참여가 보장되는 산재보험제도가 운용되어야 한다. 조합주의 전통이 강하여 국가의 적극적 의무가 제한되어 있는 독일에서도 산재보험은 노사의 동등한 참여 속에서 의사 결정이 이루어지고 제도가 운용된다. 그런데 이미 국가 공보험으로, 제도적으로는 국가의 적극적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갖춘 한국에서 노동자의 참여가 극히 형식적이고 제한적이라는 점은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산재보험제도의 해체와 건강보장제도의 통합
산재보험 적용을 받아야 하는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이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고 건강보험으로 넘어오는 경우가 매우 많다. 뿐만 아니라, 현행 산재보험 체계에서 명확하게 업무상 질병이라고 보기 어려운 질병도 사실은 노동자의 업무 또는 직업과 상관없다고 단정 짓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결과적으로 산재보험으로 처리되어 사업주 부담으로 치료를 받아야 하는데도 실제로는 노동자 개인 부담이 훨씬 큰 건강보험으로 치료를 받게 되어 사업주에서 노동자로 부담이 전가되는 일이 발생한다. 그러나 이러한 치료비 전가 문제는 전체 문제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다.
한편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닌 경제활동인구의 경우, 질병으로 인한 소득손실은 별도의 민간보험을 들지 않는 한 보전할 방법이 없다. 민간의료보험을 들기 어려운 농민이나 소규모 자영업자의 경우, 질병에 이환될 경우 의료비 부담에 소득손실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게 된다. 현재 일반화되어 있는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한 건강보험 가입자도 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소득손실은 암 보험 같은 일부 질병의 정액형 상품에 가입한 경우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질병에서 보장하지 않기 때문에 국민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전체 국민을 대상으로 한다는 보편성 장점이 있기는 하지만, 건강보험은 보장성 수준이 매우 낮아서 질병으로 인해 발생하는 치료비 부담, 소득손실로부터 가계를 보호하는 데에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 특히, 소득보장을 해주지 않기 때문에 동일한 질환이더라도 소득 보전이 필요한 이들과 그렇지 않은 이들 사이에 의료이용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현재 소득 손실에 대한 별도의 보장 규정이 없는 직장에 다니는 노동자이거나 농민 등을 포함하여 자영업에 종사하는 국민들은 일정 기간 재활과 요양이 필요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치료비 부담 뿐 아니라 소득손실에 대한 대안이 없기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고 서둘러 일터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문제는 산재를 당한 노동자에게도 해당한다. 실제 산재임에도 불구하고 산재보험의 적용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경우 충분한 치료와 재활을 받지 못하고 직장으로 복귀되는 경우가 많다. 당연하게, 상황이 더 악화될 수밖에 없고,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건강보험의 낮은 보장성 문제는 직업성 질환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보더라도 노동자의 건강과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건강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이 무엇이든,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제도를 구분하여 보장을 다르게 할 이유가 없다. 건강보험도 산재보험에 준하는 보장성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며, 임금노동자든 자영업자든 아프거나 다치는 상황이 발생하여 소득손실이 발생한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든 치료를 받고 소득 손실에 대하여 보전을 받으며 건강하게 일터로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만 현행 제도 하에서는 대상자를 구분할 뿐 아니라 아프고 다친 이유를 엄격한 잣대로 구분하여 업무관련성 유무에 따라 보장의 내용을 달리 하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건강권의 보장이라는 점에서 매우 부적절할 뿐 아니라, 복잡한 행정 절차에서 비롯된 사회적 비용 문제를 고려하더라도 적절치 않다.
사회복지제도가 발달해 있는 북유럽 국가들에서는 불건강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결과가 동일하다면, 그 원인이 무엇이든 간에 동일하게 보장한다는 보편주의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사회보험 방식의 의료보장을 시행하는 국가들은 치료비와 상병수당을 의료보험에서 제공하고, 국립보건서비스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정부가 세금을 통해 치료비를 부담하고 상병수당은 별도의 사회보험료를 거두어 지급하고 있다. 이 경우 산재보험은 보편적 보장이 이루어진 후 부가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다. 질병의 원인을 한두 개 원인으로 국한시키는 것이 불가능하고, 거의 모든 질병이 많든 적든 업무관련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업무 내용과 질병의 인과관계를 엄밀하게 평가하여 특정 질병만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하는 현행 산재보험은 매우 시대착오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렇게 시대착오적인 산재보험조차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매우 취약하다보니 급여 보장성 측면에서는 건강보험에 비해 낫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산재보험제도와 건강보험제도를 당장에 통합시키는 것보다 두 제도의 낮은 보장성을 높이면서 제도의 통합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건강보험의 경우 낮은 보장성을 높이면서 상병수당제도를 도입하고, 산재보험은 건강보험제도와 연동되는 방식으로 승인절차를 개선하고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 등의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을인 산재보험제도는 없어져야
재해 노동자가 신청하고 입증해야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지금과 같은 산재보험제도는 없어져야 한다. 노동자의 건강 안전망으로서 산재보험이 아닌 사업주 책임을 배상해줄 목적으로 만들어진 산재보험이라면 비스마르크의 무덤으로 보내져야 한다. 사회보험으로서 산재보험이 아닌 고용관계의 하부 구성요소로서 산재보험이 존재하는 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체, 그리고 사회적 쟁점으로 부각되었거나 될 것 같은 산재 사건만 처리될 가능성이 크다. 본인이 산재보험으로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대다수 노동자들에게 산재보험은 남의 일이다. 비정규직, 임금노동자와 별반 다르지 않은 환경에 처한 다수의 자영업자들에게 산재보험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신청주의와 인과성이라는 극히 비과학적이고 반인권적인 잣대를 걷어치우고,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보장받고 암울한 현실에서 탈출할 수 있는 꿈을 꿀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필요하다. 현 정부가 적폐를 청산할 의지가 있다면 자본의 행정을 대리해주고 관료주의와 전문주의에서 한 발도 진전하지 못하는 산재보험제도를 뜯어고치는 것이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