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소식
수돗물 오염에 맞선 미국 플린트시 주민들의 투쟁
박진욱 / 계명대학교
2017년 7월, 미국의 TV채널 라이프타임은 미시건주 플린트(Flint) 시의 수돗물 오염사건을 TV영화로 제작 중이라는 발표를 했다. “플린트”라는 제목으로 방영될 이 영화는 2014년에 플린트 시에서 수돗물 오염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떤 일들이 벌어졌고 지역공동체의 연대와 투쟁이 어떻게 정부를 움직였는지 등 문제 해결의 과정을 보여줄 것이라고 한다.
플린트 시에서는 2014년 4월부터 오염된 수돗물이 공급되기 시작했는데, 1년 반이 지난 2015년 10월이 되어서야 오염된 물 공급이 중단되었다. 그동안의 노출로 약 3천 명의 어린이가 납 등의 중금속 중독을 진단받았고, 12명이 레지오넬라 병으로 사망하기까지 했다. 현재까지도 이와 관련한 소송들이 진행 중이다. 이 사건은 비용 절감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던 지방 정부의 잘못된 의사결정과 계속된 거짓말이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결과적으로 더 많은 사회적 비용을 초래한 상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100만 달러를 아끼기 위한 선택
미시건 주에 위치한 플린트 시는 자동차 생산기지로 유명했던 디트로이트 시와 인접한 공업 도시이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지속적 불황으로 미시건 주의 일부 지방자치단체들은 재정 파산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2011년, 미시건주 주지사에 취임한 공화당의 릭 스나이더는 플린트 시를 포함한 재정 위기 지자체에 비상재무관리자를 임명하고 지자체의 재정 관리 권한을 부여했다. 플린트 시는 디트로이트 시가 인근 휴론 호(湖)에서 취수한 상수를 다시 구매하여 수돗물을 공급해왔는데, 재정 파산을 겪은 디트로이트 시가 상수사용료를 인상했다. 역시 재정 적자에 시달리던 플린트 시는 인상된 사용료를 지불하기보다 다른 지자체와 연합하여 직접 휴론 호로부터 물을 끌어오는 것이 장기적으로 재정 절감이 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파이프 건설을 시작했다. 수돗물 사용계약 중단으로 재정에 타격을 받게 될 디트로이트 시와 플린트 시 사이에는 분쟁이 일어났고, 디트로이트 시는 2014년 4월 이후로 물을 공급하지 않겠다고 통보했다. 파이프 건설 완료까지 2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디트로이트 시와 2년 단기재계약을 하면 500만 달러(약 56억 원)의 비용이 드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플린트 시는 파이프 건설 전까지 인근의 플린트 강을 임시 취수원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하고, 2014년 4월부터 플린트 강의 물을 상수도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플린트 강을 임시 취수원으로 사용하는 데에도 역시 400만 달러에 달하는 비용이 들었다. 겨우 1백만 달러를 절감한 셈인데, 문제는 플린트강의 수질이 상수원으로 적합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드러나는 문제들과 계속되는 거짓말에 맞서 싸우기
2014년 4월부터 플린트 강으로 수원지가 변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돗물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물이 변색되었고 악취가 날 뿐 아니라 발진 같은 피부질환과 탈모가 발생한다는 내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해 여름에는 물이 대장균에 오염되어 있으니 끓여서 사용해야 한다는 주의보가 반복적으로 내려졌다. 10월에는 GM의 트럭조립 공장이 플린트 강물이 엔진 부식 등을 일으킨다며 플린트 강에서 끌어온 상수 사용을 중단하고 휴론 호의 물을 구매하여 사용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해가 바뀌어도 문제는 계속되었다. 2015년 1월, 플린트 강에서 공급되는 상수의 트리할로메탄 농도가 허용기준치 넘게 검출되어 환경보호청(Environmental Protection Agency, EPA)의 경고를 받았다. 트리할로메탄은 수돗물의 염소소독 처리과정에서 수중의 유기물과 염소가 화합해 생성되는 발암물질이다. 그러나 플린트시장은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본인과 가족들도 매일 수돗물을 먹는다며, 수돗물이 식수로서 안전하다고 이야기했고,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주민들은 수돗물로 인한 건강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면서 주민 회의를 조직했다, 변색된 수돗물을 물병에 담아들고 시위를 시작했다. 문제가 계속 발생하고 주민들의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면서 플린트 시의회도 플린트 강의 취수원 사용을 중지할 것을 시에 건의했다. 하지만 플린트 시의 비상재무관리자는 비용 증가를 이유로 이러한 제안을 거절했다.
2015년 2월, 플린트 주민 리 앤 월터의 집에서 측정한 수돗물의 납 농도가 EPA 기준치의 7배를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시 EPA는 높은 납 농도에 우려를 표하면서,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에 플린트 시의 상수처리과정에 문제가 없는지 문의했다.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은 플린트 시가 부식 방지를 위해 최적화된 처리를 하고 있으며,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플린트 시는 부식 방지를 위해 아무런 처리도 하지 않았음이 나중에 밝혀졌다.
2015년 3월, 플린트 시의회는 주민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디트로이트 시로부터 물을 구매하여 사용하는 결의안을 투표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플린트 시 비상재무관리자는 이번에도 재정 적자를 이유로 이 결의를 무효화했다. 주민 리 앤 월터의 집에서 납 농도를 측정하고 두 달이 지난 2015년 4월, 그의 아들이 납중독을 진단 받았다. 리 앤 월터는 앞장서서 문제를 제기하고 원인을 찾아 나섰다. 그리고 납중독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에서 부식된 수도관이 납 노출의 원인임이 밝혀졌다. 플린트 강의 수질은 농장 유출수, 하수, 산업 폐수로 오염되어 있었고 염분 함량과 산성도가 높았다. 염분과 산이 오래된 납 수도관의 코팅을 부식시켜 납을 노출시키고 이렇게 노출된 납이 용출되어 각 가정의 수돗물에 높은 농도로 함유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하루에 100달러를 들여 부식방지제를 사용했어야 하는데, 플린트 시와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은 이 비용을 아끼기 위해 부식방지제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2015년 6월, 플린트 시 가정의 수돗물에서 고농도 납이 검출된 것에 대한 EPA 담당자의 메모가 공개되었다. 주민들의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고 계속적인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그러자 플린트 시장은 지역 TV프로그램에 출연해 직접 수돗물을 마시는 장면을 보여주면서 주민들을 안심시켰다.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 대변인도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돗물에 문제가 없다며 안심해도 된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는 플린트 시와 미시건 주정부를 믿을 수 없었던 지역주민들과 활동가들은 민간전문가들과 협력해 수질을 검사하고, 정보 공개 청구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해 나갔다. 2015년 9월, 버지니아 공과대학의 마크 에드워즈 교수 연구팀이 플린트 시 가구의 40%에서 허용 기준치 이상의 납이 검출되었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같은 달 헐리 메디컬 센터 의사인 모나 한나-아티샤는 플린트 강으로 취수원이 변경된 후 플린트 시 아동들의 혈중 납 농도가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미시간 주 환경품질국은 이 두 연구 결과도 부인했지만, EPA를 포함한 전문가들은 플린트 시의 납 오염을 공식 보고하기에 이른다. 이후 마크 에드워즈와 모나 한나-아티샤는 플린트 시 수돗물의 납 노출 문제를 드러나게 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7년 7월에 MIT 미디어 랩 불복종 상을 수상했다.
문제 해결을 위한 비용은 최소 2억 달러
이제 플린트 시 수돗물 오염 문제가 공식화되고 전국적으로 언론을 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2015년 10월, 미시건 주 주지사는 이 문제에 대해 공식 사과하고 플린트 시의 상수원을 원래로 되돌리는 것에 대한 예산 집행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취수원이 변경되었어도 이미 수도관이 부식되었기에 여전히 납이 배출되었다. 2016년 1월,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플린트 시에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병에 든 생수와 수도 필터 등을 무상으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생수 공급은 올해 2월까지 계속되었다.
수돗물 오염 문제는 사건 발생 후 3년이 넘게 지나고, 지방정부가 이를 인정한 지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도 진행 중이다. 주민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의사결정을 했던 비상재무관리자들과 문제를 감추기에만 급급했던 전현직 공무원들에 대한 소송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납수도관 교체와 납중독 진단을 받은 이들에 대한 치료 지원 등을 위한 정부 예산도 얼마 전에야 합의되었다. 수도관 교체와 치료 등에 소요되는 비용은 최소 2억 달러(약 2,250억 원)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돗물 오염이 주민의 건강 문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도 진행 중이다. 플린트시의 영아사망률은 2013년?2015년 평균 출생아 1천 명 당 10.7명 수준이었는데, 2015년에는 13.7명으로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에 발표되기도 했다.
플린트시의 수돗물 오염 사건은 지역 주민의 건강을 고려하지 않고 단지 비용 절감만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행정이 결과적으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교훈을 보여준 전형적인 환경오염 사건이다. 또한 플린트 주민의 약 60%가 흑인이라는 점에서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로 표현되는 사건이기도 하다. 여전히 문제 해결 과정에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진행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미국 같은 부자 나라에서, 고작 안전한 수돗물 공급을 위해 시민들이 투쟁해야 했다는 사실이 황당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환경과 건강을 위한 지역 주민들의 연대와 투쟁이 어떻게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교훈 사례이기도 하다. 올해 10월 말 방영 예정인 영화 “플린트(Flint)”에서 시민들의 투쟁과 공동체의 연대운동을 어떻게 그려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