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무 스트레스 폭발 1분전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고용불안·성과주의·장시간 노동 속에서 몸과 마음은 완전히 지쳐가고…
▣ 조계완 기자kyewa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인천시 부평구에 있는 대우자동차판매 본사 앞 천막농성장. 숨진 지 300일이 다 돼가지만 아직 장례도 못 치르고 있는 한 노동자의 주검이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대우자판 대구 남산지점 주임이었던 최동규(당시 38살)씨는 2006년 9월 어느 날 아침, 집에서 출근 준비로 샤워를 하다 쓰러졌다. 그리고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뇌지주막하출혈’(뇌출혈)에 의한 사망이 병원의 진단이었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과도한 스트레스가 남편을 죽였다”며 천막농성을 계속하고 있다. 극도의 스트레스가 뇌출혈의 원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어느 자동차 세일즈맨의 죽음
무엇이 자동차 세일즈 직원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일까? 대우차판매는 대우차 부도사태가 터진 뒤부터 10년째 구조조정을 지속하고 있다. 구조조정 이전에 2천여 명이었던 영업소 판매직 직원은 현재 500여 명으로 줄었다. 회사는 실적이 낮은 지점들을 끊임없이 통폐합했고, 판매직 직원들은 이 영업소에서 저 영업소로 옮겨다녀야 했다. 이런 와중에 회사는 또 2001년 성과급여 중심의 SR직(기본급 30%, 판매실적 성과급 70%)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했다. “차를 못 팔면 회사를 떠나라”는 협박이나 다름없었다. SR직 전환을 거부한 직원들은 자동차가 거의 안 팔리는 한계지점으로 발령나기 일쑤였다. 당시 최씨를 비롯한 350여 명이 울며 겨자 먹기로 SR직 전환을 받아들였다. 정리해고 위협 앞에서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불안감이 밀려왔고, 판매실적에 따라 월소득이 들쭉날쭉하면서 견디기 힘든 나날이 계속됐다.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면서 최씨는 늘 담배를 피워물었고 술을 먹는 횟수도 늘어났다. 회사 관리자들과의 말다툼도 잦아졌다. 급기야 지난해 10월 회사는 승용차판매 부문을 분사해 영업사원들을 모두 별도 법인(DWN직영판매)으로 발령냈다. 판매실적이 부진한 직원은 희망퇴직 대상이라는 흉흉한 소문까지 돌았다. 밤잠을 제대로 이룰 수 없었고, 극심한 스트레스가 최씨의 몸과 마음을 괴롭혔다.
대우자판노동조합 이창권 사무국장은 “예전에는 안 그랬는데 왜 요즘 내가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조합원들이 많아졌다”며 “숨진 최씨 외에도 조합원 두세 명이 스스로 병원을 찾아갈 정도로 우울증이 심각하게 퍼져 있다”고 말했다. 10년간 지속된 구조조정이 노동자들을 극심한 스트레스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이다. 원진재단 부설 녹색병원이 지난해 11∼12월 대우자판 노동자 192명을 대상으로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진단한 결과, 102명(53.1%)이 상담이 필요한 우울증 상태였다. 50명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직무 스트레스 측정 결과’도 국내 노동자들의 평균 점수(50.8점)보다 훨씬 높은 61.5점이었다. 직무 스트레스의 여러 항목 가운데 고용불안을 뜻하는 ‘직무 불안정’(점수 61.2 이상이면 ‘매우 높다’)의 경우 대우자판 노동자들은 평균 80.1로 극도의 직무 불안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직무 스트레스는 우울증으로 이어지게 마련인데, 직무 요구도(일의 부담감)가 평균 이상으로 높은 대우자판 직원 가운데 심한 우울 상태인 사람이 19명(44.19%)에 달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20년, 사업장마다 민주노조가 결성되고 노동조합의 기본권은 보장되었다. 하지만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일할 노동건강권은 과연 보장되고 있는 것일까? 일상화된 구조조정과 고용불안, 성과주의 확산, 장시간 노동, 작업속도 증가, 비정규직 급증 속에서 노동강도는 강화되고 한국 노동자들의 몸과 삶은 완전히 지쳐가고 있다. ‘일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운이 좋은 편이니 죽지 않을 정도면 참고 일해라’는 분위기 속에서 노동자들은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해오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있다. 오래 지속되는 극도의 스트레스는 자신의 몸이 극도의 긴장 상태에 있는 줄도 모르고 오히려 스트레스 상황에 ‘잘 적응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더욱 위험하다.
△ 과도한 직무 스트레스가 노동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인천시 부평구 대우자동차판매본사 앞의 최동규씨 유족 천막농성장.
고위험 스트레스군 22%
연세대 원주의대 장세진 교수(예방의학교실)가 2001년 공단 밀집지역 노동자와 종합병원 노동자 등 245개 사업체에 근무하는 노동자 총 697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건강군’(0∼8점)이 5%(331명), ‘잠재적 스트레스군’(9∼26점)은 73%(4541명), ‘고위험 스트레스군’(27점 이상)은 22%(1346명)로 나타났다. 조사 대상자 중 약 5%만이 스트레스를 느끼지 않으며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장 교수는 “스트레스는 신경증, 우울증, 정신분열증 등 정신과적 질환을 초래할 뿐 아니라 육체적 건강도 위협한다”며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는 고위험군 집단은 장기화할 경우 심혈관계 질환(협심증·심근경색 등)이나 탈진, 근골격계 질환, 위궤양, 면역기능 저하를 유발하고, 극단적으로 과로사로 진행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근로복지공단 조사에 따르면, 우울증 등 정신적 질환으로 인한 산업재해는 2000년 27건에서 2004년 107건으로 증가했다. 과로·스트레스 등에 따른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도 2000년 545명에서 2003년 820명, 2004년 788명으로 늘어났다. 2004년의 뇌심혈관 질환 사망자 수는 전체 산재 사망자(2825명)의 27.9%를 차지한다. 또 노동부에 따르면, 스트레스·과로 및 간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2000년 62명, 2003년 88명, 2004년 54명이었다. 숨이 턱 막히고 목을 죄는 스트레스가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원진녹색병원 윤간우 과장(산업의학과)은 “과거에는 과로·스트레스가 절대적인 노동시간 크기에 따라 평가됐으나 지금은 ‘질적인 과로’, 즉 단위시간당 생산량과 압축적인 노동강도, 긴장도를 중요한 지표로 고려해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사무직 노동자뿐 아니라 블루칼라 노동자들도 만성피로에 시달리면서 이른바 ‘골병’(근골격계 질환)과 과로사에 노출되고 있다. 2005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현대자동차 조립라인 노동자 1천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자. 한국인의 체형을 기준으로 ‘작업 중 에너지 소비량’ 허용기준은 1분당 3.02kcal(서양은 5.0kcal)인데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평균 에너지 소비량은 1분당 4.7kcal로 기준을 초과하고 있었다. 또 ‘관절 반복성’의 경우 유럽연합(EU) 연구팀은 팔 관절을 1분당 10회 이상 반복해서 쓰지 말라고 권고하는데, 현대차 노동자들은 손목은 평균 15.5번, 팔꿈치는 평균 13번을 사용하고 있었다.
현대차 노동자들은 일주일 평균 60.6시간, 한 달 평균 282.4시간을 일한다. 매일 잔업 2시간, 한 달 서너 번 특근은 기본이다. 일에 지쳐 있기 때문에 직장 동료나 가족 이외의 다른 대인관계는 거의 없고, 일주일마다 밤낮이 뒤바뀌는 교대근무 때문에 공장 바깥의 사회생활은 피폐해져 있다. 모처럼 시간이 나도 할 줄 아는 것이 없고, TV 앞에 누워 꾸벅꾸벅 졸며 보낸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공유정옥 연구원은 “현대차 노동자들을 면접 조사해보니 다들 별다른 삶의 즐거움 없이 무기력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는데, 스트레스 증상의 일종”이라며 “더 못해먹겠다거나 이러다 죽는 거구나 하는 좌절감, 특히 고용불안 속에서 일감이 있을 때 밤낮 없이 일해 벌어놔야 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세계 수준의 공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현장 노동자들의 노동건강은 악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현대차의 골병 환자는 2000년에 165명에서 2004년 722명으로 대폭 증가했다. 특히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뇌심혈관계 질환에 걸린 노동자들이 2003년부터 급증하면서 현대차 노동자들 사이에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걱정이 팽배해 있다.
각종 디지털 감시가 스트레스 더 높여
현대차에서 뇌심혈관계 질환 노동자들이 증가하기 시작한 2003년은 회사가 GT-5(Global Top-5) 달성을 외치면서 노동강도를 바짝 강화한 때와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세계시장 5위권 진입을 목표로 설정한 현대차는 생산물량이 늘어나면 노동시간으로 커버하고, 물량이 줄어들면 비정규직을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인력은 늘리지 않고 대신 ‘맨아워’(M/H·공수(工數)·차 한 대를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노동자 수와 작업시간)를 조정해 작업 속도를 증가시킨다. 회사 쪽이 맨아워를 정하면 노동조합은 이달에 특근을 몇 개 하고 잔업을 몇 번 할 것인가를 결정할 뿐이다. 건강하게 일할 권리는 생각할 여유조차 없다. 특히 현대차 공장에서는 시장 판매 상황에 맞춰 생산라인 교체가 흔히 일어나고 있는데, 신차 라인을 갖추는 동안에 기존 라인에 일했던 수백 명은 몇 주일 혹은 한 달간 무급휴가를 가야 한다. 공유정옥 연구원은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 잔업·특근이 증가하고 있고, 고용불안은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노동자 스스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른바 ‘생존자증후군’은 실업을 걱정하는 사람이 실제로 실업을 당한 사람보다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설명한다. 회사는 인원 감축을 통해 노동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자들이 별 문제 없이 이를 견뎌내면 또 한 번 옥죄는 방식으로 생산물량 증대를 꾀하기도 한다. 특히 현대차는 매주 ‘함께 가는 길’이라는 회사 소식지를 개별 노동자들한테 발송하는가 하면, 삽화를 곁들인 대자보도 공장 벽마다 붙여 “더 많이 일해야 회사가 살 수 있다”며 노동자들을 압박하고 있다.
△ 고용불안은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노동자 스스로 받아들이게 만든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조립라인.
작업공정마다 머리 위에 설치돼 있는, 생산 현황을 알리는 공장의 전광판도 노동자들을 스트레스로 내몬다. 생산이 잘 진행되고 있다는 전광판 초록색 표시가 노란색으로 바뀌면 어느 노동자가 너무 더디게 일하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했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스트레스에 의한 노동자 관리’인 셈이다. 구조조정과 성과주의 확산, 노동자 간의 경쟁 격화 속에서 이제는 터놓고 이야기할 직장 동료도 별로 없다. 인력이 부족한 상태에서는 동료들이 결근하지 못하게 서로 못살게 굴고, 결근하면 몹시 원망하게 된다. 일이 힘들수록 사소한 것에서조차 동료들과의 비공식적인 협동이 더 필요한 법인데, 오히려 회사의 노동규율 강화 못지않게 직장 동료들에 의한 스트레스 압력도 가해지는 형국이다. 노동건강연대 이상윤 정책국장은 “잘 드러나지 않지만 작업장의 노동자 감시 프로그램이 스트레스를 더 높이고 있다”며 “각종 디지털 감시가 확산되면서 제조업뿐 아니라 서비스업과 일반 사무직에서 직무 스트레스가 중요한 문제로 대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말 개인이 알아서 해결해야 할 문제인가
외환위기 이후 기업 인수·합병과 매각 등으로 회사의 주인이 자꾸 바뀌는 것도 직장인들에게 심각한 스트레스 요인으로 작용한다. 2005년 두산으로 경영권이 넘어간 두산인프라코어(옛 대우종합기계)에서는 2006년 5월과 7월, 사무직 노동자 두 명이 지하철에 뛰어들거나 건물에서 뛰어내려 자살했다. 두산인프라코어 사무직 노동조합 쪽은 “두산으로 회사가 넘어간 뒤 새로운 기업문화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많은 노동자들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겪었고, 정신과 치료를 받은 사람도 있다”며 “특히 조합원들에게는 업무도 제대로 안 주고 성과급에서도 배제하는 등 견딜 수 없게 만들어 스트레스를 줬다. 그 결과 지금은 조합원들이 거의 탈퇴하고 몇 명 안 남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들은 스트레스를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인식하기보다는 개인적으로 알아서 해결해야 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희생자들만 탓하는 시각인데, 경기 침체기일수록 업무상 스트레스 문제는 뒤편으로 밀려나기 마련이다. 특히 기업들은 “스트레스의 원인은 개인적이고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는 이유를 들이대면서 작업환경에 의한 스트레스를 부정하기 일쑤다.
그러나 대우자판에서처럼 한 노동자의 죽음을 계기로 직무 스트레스 문제가 크게 터진 사업장은 별로 없지만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일상화되면서 많은 직장에서 스트레스 문제는 폭발 직전의 상황까지 와 있다. ‘스트레스 병동’이 돼가고 있다면 과장일까? 다만 고용불안 속에서 노동자들이 감히 말을 못해왔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 민주노총은 생산직 노동자의 직업병과 사고성 재해를 중심으로 한 ‘산업안전’이란 용어를 최근 ‘노동안전’이란 말로 바꿔 사용하고 있다. 김은기 민주노총 노동안전부장은 “노동안전으로 용어를 바꾼 건 뇌심혈관 질환이나 근골격계 질환 등 정신건강과 관련된 질병들이 급증하고 있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면서 “앞으로 작업장의 직무 스트레스와 우울증에 대한 문제를 과감하게 바깥으로 끌어내 의제화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객관적인 스트레스 측정 가능하다”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가 개발한 ‘한국인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
노동자들의 직무 스트레스는 어떻게 측정, 평가하는 것일까? 직무 스트레스 측정은 개개인의 주관적인 응답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개인적 성격·상황·태도에 따라 상이하게 표출될 가능성이 있고, 자연히 평가의 정확성과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 때문에 장세진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를 중심으로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는 2002년부터 한국에 맞는 객관적이고 타당성 있는 직무 스트레스 측정 도구를 개발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 결과로 2005년에 ‘한국인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KOSS) 기본형이 나왔다.
이 기본형은 8개 영역에 걸쳐 총 43개 설문 문항으로 구성된 구조화된 설문지인데, 24개 문항으로 된 단축형 측정도구도 만들었다. 이 측정도구는 43개 각 문항별로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로 응답하도록 돼 있고 각각에 대해 1, 2, 3, 4점을 부여한다. 직무 스트레스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 수치는 각 영역별 점수를 100점으로 환산해 이를 더한 뒤 8로 나누는 방식으로 산출된다. 설문지의 8개 영역은 △조직체계와 보상 부적절 △직무 요구도(직무의 객관적 또는 심리적 압박감이나 부담, 일의 과부하 등) △직무 자율성(노동자가 갖는 업무 관련 결정권한이나 재량권) 결여 △대인관계 갈등 △직무 불안정성(일자리를 잃거나 회사가 도산할 가능성) △직장문화 △고용 불안정성 △물리적 작업환경 등이다. 또 43개 설문 문항은 △나는 일이 많아 항상 시간에 쫓기며 일한다 △업무량이 현저하게 증가했다 △직장에서 내가 힘들다는 것을 알아주고 이해해주는 사람이 있다 △직장 사정이 불안해 미래가 불확실하다 △나의 근무 조건이나 상황에 바람직하지 못한 변화(예: 구조조정)가 있었거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상백 연세대 원주의대 교수(예방의학교실)는 “한국형 직무 스트레스 모형은 스트레스 정도에 따라 전체 노동자들을 4개 그룹으로 나눈 뒤 직무 스트레스가 높은 상위 25%그룹(고위험 집단)은 관리 대상으로 분류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세진 교수는 “표준화된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에 대한 공정성과 신뢰성 검토는 전문가들 사이에 끝난 상태”라며 “매년 이뤄지는 건강검진처럼 전국의 사업장에서 시행하는 일만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일본에서는 이미 2년에 한 번씩 전국 사업장마다 직무 스트레스 조사를 하고 있다.
물론 사용자 쪽은 직무 스트레스 측정이 노동자들의 주관적 소견에 기초한 검진이므로 신뢰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한다. 노동부도 비슷한 이유로 직무 스트레스 측정도구를 사업장마다 도입하는 데 난색을 표명하고 있다. 사실 노동자들이 담합을 통해 스트레스가 높은 쪽으로 응답해 측정 결과가 왜곡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다. 측정 결과 스트레스 고위험 사업장으로 나타나면 노동자들과 노동조합이 보상을 요구하면서 노사 간 갈등이 터져나올 수도 있다. 장세진 교수는 “설문 항목을 보면, 모순된 응답을 하는 경우 크로스체크해서 판별할 수 있는 장치도 돼 있다”며 “해당 작업장에서 스트레스를 초래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노사가 원인을 파악하려고 머리를 맞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심장과 혈관이 위험하다
과도한 스트레스는 뇌심혈관계 질환와 근골격계 질환 유발
‘적당한 수준’의 스트레스는 긴장감을 불어넣어 심신의 활력을 제공하고 성취동기를 부여한다는 주장이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에서는 스트레스를 ‘디스트레스’(di-stress·부정적 스트레스)와 ‘유스트레스’(eu-stress·긍정적 스트레스)로 구분하길 좋아한다. 반면 영국 산업안전보건청(HSE)은 스트레스 중에서 유스트레스는 거의 없고, 대부분 디스트레스라면서 스트레스는 정신건강을 심각하게 위협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과도한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냐를 둘러싼 논란이 제기될 수 있는데, 분명한 건 ‘단기간의 자극’으로서 스트레스는 삶의 악센트가 될 수도 있겠지만 장기화하고 감당할 범위를 넘어서는 스트레스는 질병을 유발하게 된다. 스트레스가 심장질환과 수면장애 등 각종 질환과 심리장애를 유발한다는 ‘밀접한 관련성’은 오래전부터 각종 연구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스트레스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지속되면 심혈관계 기능이 나빠져 심근경색을 초래할 수 있다. 심혈관 기능이 스트레스에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인데, 수많은 연구에서 뇌심혈관계 질환은 직무 스트레스와 가장 관련성이 높은 질환으로 알려진다. 직무 스트레스는 뇌심혈관계 질환뿐 아니라 근골격계 질환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52개국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국제 조사인 ‘인터하트 스터디’에 따르면, 사업장에서 자주 스트레스를 겪는 노동자는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는 노동자보다 급성 심장마비 위험이 1.38배 높았고,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는 위험률이 2.14배 높았다. 또 스웨덴의 조사를 보면 근로 중 갑자기 시간제한 압박을 받게 되면 그 뒤에 이어지는 24시간 동안 심장마비에 걸릴 확률이 6배 늘어난다. 스트레스의 ‘방아쇠 효과’인 셈이다. 핀란드 조사에서는 특정 사업장에서 대규모 구조조정(18% 이상 인력감축)이 있었을 경우 이어지는 7년 반 동안 노동자가 심장계 질환으로 사망할 확률이 구조조정을 실시하지 않은 사업장보다 2배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