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을 권리와 화장실 갈 권리 보장해야”
미국·캐나다·영국, ‘인권·건강·직업차별’ 공세적 제기
매일노동뉴스 구은회 기자
오래 서서 일하는 노동자를 위해 의자를 비치하고, 원할 때 화장실에 갈 수 있도록 보장하라는 주장은 전세계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의 공통된 요구다. 다만 나라별 정서에 따라 이같은 요구가 구체적인 사회의제로 부각된 경우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미국과 캐나다의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은 ‘화장실 휴식(bathroom breaks)’이라고 불리는 운동을 통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에 나섰다. 미국과 캐나다의 백화점, 슈퍼마켓, 닭고기 가공농장, 식음료공장 노동자들이 가입한 노조인 RWDSU(Retail, Wholesale and Department Store Union)는 ‘화장실 이용을 위한 휴식시간 확보’를 가장 주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화장실 휴식 운동’을 벌이고 있다. 또한 근골격계 문제, 대형점포의 실내공기 질 문제 등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에게 많이 나타나는 산업안전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RWDSU는 “장시간 한자리에 서서 일해야 하는 유통서비스 노동자들에게 화장실 휴식 및 이를 위한 적절한 화장실 마련은 중요한 문제”라며 “화장실에 갈 필요가 있는데도 못 가게 막는 것은 노동자의 권리와 인격·건강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소변을 참는 것은 요로감염의 위험을 증가시키고, 특히 임신 중 요로감염은 저체중아 출산으로 이어져 신생아의 건강상태까지 위협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상점이나 창고 노동자 34만명이 가입해 있는 영국의 USDAW(Union of Shop, Distributive and Allied Workers)는 “직업의 귀천을 나누는 사회적 차별이 서서 일하는 노동자를 방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USDAW는 “영국의 가장 큰 기업에서조차 그들의 직원에게 의자 제공을 거부하고 있고, 그 결과 하루의 대부분을 서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하지정맥류, 다리와 발의 혈액순환장애와 부종, 관절 문제, 심혈관계 문제, 임신관련 문제 등 심각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사회적으로 알아주지 않는 직업에 종사하는 노동자일수록 더 장시간 서서 일할 것을 강요 받는다”고 지적하고 있다.
<앉을 권리는 ‘법전’에만 있다>
-유통서비스 노동자 ‘산업안전보건법’ 있으나 마나, 지도감독 소홀-
우리나라 산업구조는 제조업에서 서비스업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산업안전 정책은 여전히 제조업 남성 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서비스업종에 근무하는 대부분의 여성노동자들은 산업안전 정책에서 소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서비스업종의 산업안전문제에서 심각한 문제점은 이에 대한 노동당국의 지도감독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산업보건기준에관한규칙 277조에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가 작업 중 때대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는 때는 의자를 비치해야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백화점, 대형마트 등 대부분의 유통사업장에서 ‘의자’에 앉는 사람은 ‘손님’이지 ‘노동자’가 아니다.
김신범 노동안전보건교육센터 교육실장은 “서비스 노동자들의 노동안전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가 있더라도 사업주에 대한 지도감독은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면서 “실제로 특별지도점검은 장마철, 해빙기 등 계절적인 요인에 맞춰 건설현장이나 제조사업장에서만 실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서비스연맹에 따르면 무거운 박스를 나르거나 계산대에서 반복된 작업으로 상당수 서비스 노동자들이 근골격계질환에 노출되어 있지만 지난 2004년 이후 3년마다 실시되고 있는 근골격계유해요인조사도 서비스사업장에서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 역시 이를 그저 방관만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신범 교육실장은 “법제도적 보호장치를 만드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를 제대로 지도감독하는 것”이라며 유통서비스 명예산업안전감독관을 통해 실질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07년11월15일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