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국적기업 노동착취 실태 첫 보고서
한달 30일 ‘노예노동’에
여성 임신조사 요구도
유명 다국적 의류·운동용품 기업의 제3세계 하청공장에서 벌어지는 노동착취 실태에 대한 국제 노동·인권단체들의 첫 종합 보고서가 나왔다. 이 보고서는 나이키·아디다스·리복 등 7개 다국적 기업의 실태조사 협조와 해당 기업의 개선 약속까지 담고 있어, 국제적인 노동착취 근절운동의 중요한 결실로 평가된다.
미국 등 전세계 노동·인권단체, 175개 대학, 12개 다국적 기업이 참여한 ‘공정한 노동 연합’(fairlabor.org)은 최근 한국 공장 6곳을 포함한 19개국의 185개 하청·납품 공장 노동실태를 분석한 153쪽의 를 내놨다. 10일 이 보고서에 따르면 스리랑카의 한 하청공장 노동자 14명 가운데 2명은 한달에 30일을 쉼없이 일하고 11명은 28일 동안 일하는 중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또 스리랑카와 타이의 공장에선 노동력 착취를 극대화하기 위해 모든 여성노동자들에게 임신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등 전체의 25%인 48곳이 국제 노동기준을 한 건 이상 어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해당 기업의 자체 실태조사 및 개선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가운데 나온 것이어서 일반적인 하청공장들의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짐작된다.
2001년 8월부터 지난해 7월 말까지 실시된 이번 조사결과 위반 사례가 가장 많은 부문은 작업장 안전규정으로 전체 위반건수의 26%를 차지했다. 이어 노동시간(15%), 임금 및 수당규정(14%), 노동기준 고지 위반(9%), 초과근무 규정(8%), 성폭행 등 학대(8%) 차례였다. 전체 위반 건수는 공개되지 않았다.
보고서는 가장 흔한 작업장 안전규정 위반은 적절한 화재 예방 및 진화 대책이 없는 것이었다며 “독성이 강한 접착제를 쓰는 중국의 한 공장 노동자들은 일반 마스크를 쓴 채 작업하는 등 산재의 위험에 노출된 공장들이 수없이 많았다”고 밝혔다. 장시간 노동 또한 흔하게 발견돼, 한 중국 공장의 평균 초과근로 시간은 월 40∼70시간이었고 최고치는 83시간에 달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터키에서는 정확한 근무시간을 기록하는 시스템조차 없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제대로 보상을 못받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중국에서는 최저임금의 35∼85%만 지급하는 공장이 있었으며, 조사팀이 한 멕시코 공장을 방문해 15명의 노동자를 면담한 결과 절반이 넘는 8명은 임금이 어떻게 산정되는지조차 모른다고 답했다.
하청공장 노동자의 다수를 차지하는 여성들은 기혼 여성 차별, 성폭력 등의 고통까지 겪고 있다. 중남미 도미니카의 한 공장 여성노동자는 조사팀에게 “수많은 남자들에게 희롱을 당하지만 사내에서 너무 흔한 일이고 아무도 신경써 주지 않기 때문에 상부에 알리지도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2000년 결성된 ‘공정한 노동 연합’은 앞으로 매년 노동실태와 참여기업들의 개선상황을 일반에 공개하는 등 다른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압력을 강화해 갈 방침이다. 신기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