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건강> KT 상판팀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상상불허의 노동자 차별과 감시가 정신질환으로 이어지다
“지금도 길을 걷다가도 차를 몰다가도 갑자기 뒤가 시큰거려요. 누군가 나를 뒤에서 감시하고 있다는 생각에 견딜 수가 없어집니다.”
지난해 회사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노동자 감시, 미행 등 노골적인 차별로 이름을 날렸던 KT 상품판매전담팀(상판팀). 결국 KT 상판팀은 4명의 노동자가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해 정신질환으로 산재승인을 받게 되면서 사회적 충격을 던진 바 있다. KT는 사회적 질타에 ‘꼬리를 내려’ 올해 1월 상판팀을 해체하고 해당 노동자들을 일반 업무에 복귀시켰다.
그렇다면, 이제, KT 상판팀 문제는 막을 내린 것일까. 이제 그 ‘찍힌’ 노동자들은 ‘안심’해도 되는 것일까. 그들은 아무 문제없이 살고 있는가.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기자가 만난 상판팀의 그들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은 ‘상판팀’이란 떨어지지 않는 ‘주홍글씨’를 가슴에 달고 정신적인 고통의 질곡을 계속 걷고 있는 듯 보였다.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노골적 차별, 이로 인한 스트레스와 정신질환, 그리고 건강권과 인권의 침해까지. KT 상판팀 사례는 우리사회에 어떤 경종을 울리고 있는가.
▲ 3월13일 전·남북 KT인권탄압 증언대회.<자료사진>
상상을 불허하는 노동자 차별과 감시
지난해 12월 인권단체에 의해 폭로된 KT 상판팀에 대한 차별은 가히 상상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회사 관계자들이 나를 미행하고 있었어요. 휴대폰 영업을 위해 시장에 갈 때도 심지어 목욕탕에 갈 때도 미행하고 있었습니다. 회사는 매일 상판팀원의 이동경로를 감시하고 일일활동계획에서 경로를 벗어나면 직무태만을 이유로 퇴직을 종용했습니다.”
지난해 12월 인권단체가 주최한 기자회견에서 전북본부 상판팀에서 일한 박아무개씨의 증언이다. 박씨는 자기가 미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회사 감사실로 불려가서 증거자료로 제출된 사진을 보고 알았다고 했다. 그때 받은 으로 박씨는 지난해 업무상 정신질환으로 산재승인을 받고 요양 중이지만 현재 우울증, 대인기피증이 심해 바깥출입을 거의 삼가며 외부인과의 접촉을 꺼리고 있다고 한다. 또한 그동안 몸무게가 19kg이나 빠지는 등 육체적, 정신적 고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KT 상판팀은 2003년 9월 대규모 감원의 연장선에서 탄생했다. 당시 KT는 명예퇴직을 거부한 노동자 500명 가까운 인원을 인력퇴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해 12월 ‘상판팀’으로 분류해서 일반 영업직원들과는 차별적 조건 속에서 PCS, 초고속인터넷망 등 상품판매를 요구해왔다.
“우리에게 연간목표액을 제시하며 싸인할 것을 요구했어요. 모두 6천만원 가량 되는 것이었지요. 전 절대 하지 않았어요. 목표액을 채우지 못하면 싸인을 빌미로 쫓아낼 게 틀림없으니까요.”(전 충북본부 상판팀원)
“문제는 상판팀의 조건은 전혀 다르다는 거였어요. 일반 직원에겐 할인가의 상품도 주고 판매지역도 전국 어디든 상관하지 않았지만 상판팀은 할인불가 상품과 판매지역도 한정시켜왔죠. 팀장도 따로 있었어요. 철저히 이중관리를 해온 거죠.”(전 전북본부 상판팀원)
▲ 3월15일 KT 충·남북, 전북본부 상판팀 관계자들이 대전에서 모여 간담회를 갖고 있다.
대전 간담회에서 쏟아진 고통들
지난 5일 대전. 상판팀은 해체됐다지만 상판팀원들은 계속 만남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날도 충남북, 전북지역 상판팀원 20여명이 간담회 형식을 빌어 얼굴을 마주했다. ‘동병상련’이라고 했던가.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이들은 서로의 처지를 확인하며 아픔을 나눴다.
“생각해보세요. 자기를 누군가가 전담 마크해 감시하고 미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요. 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을 말입니다.”
전북본부 상판팀이었던 안미희(가명)씨는 박씨의 감시사례가 알려지면서 자기도 감시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한번은 백화점에 영업을 하러 갔는데요. 제 동료 백수경(가명)과 백화점서 점심식사를 하고 헤어지고 전 영업을 했지요. 그런데 회사관리자로부터 바로 전화가 오더라고요. 백씨와 함께 있지 않느냐고요. 또 백화점엔 왜 갔냐고요.”
“하루는 차를 몰고 밖으로 나오는데 주차장서 곧바로 차가 튀어나와 뒤따르더라고요. 처음엔 몰랐지만 그 차가 계속 따라붙으니 이상한 거예요. 차선을 이리저리 바꿔보고 유턴도 했다가 잠시 정차도 하고 골목길로도 들어가 봤죠. 어김없이 따라오는 거예요. 결국 무서워서 경찰에 신고했죠. 나중에 경찰서 들으니 KT직원 차량이었다는군요.”
군산지역 최아무개씨의 증언이다.
이날 쏟아진 유형은 대략 지역구분 없이 엇비슷했다.
상판팀원들은 자기 연고지와 상관이 없는, 출퇴근 시간이 하루 2~5시간 걸리는 지역에 배치됐고, 매일 아침 일일활동계획을 시간대별로 ‘육하원칙’에 따라 자세히 보고했고, 그 동선대로 이동하지 않을 때는 바로 지적당하고 나중엔 감사실로 불려가야 했다.
“감사실에 몇 번 불려갔지요. ‘밤샘취조’를 받기도 했습니다. 새벽녘에야 저를 보내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침에 다시 오래요. 제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충북본부의 한 상판팀원 말이다. 그는 본인의 실명은 물론 가명으로도 자기를 드러내는 게 너무 부담스럽다고 했다. 언제나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것이다.
“죽여버리고 싶다” 분노·우울증 호소
“말도 마세요. 지금도 불안하고 초조하고…. 갑가지 분노가 끓어오르면 (나를 괴롭혔던 그들을) 도끼로 찍어버리고 싶은 마음마저 들어요.”
지난해 10월 산재승인을 받은 강순문(51·전주)씨의 말이다.
대략 6개월가량 요양을 받고 있는 그는 상황이 많이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단다. 그는 25년간 기술직으로 근무해왔으나 지난해초 상판팀으로 쫓겨난 후 ‘마음의 병’을 얻었다.
“처음엔 얼마나 막막했는지 몰라요. 평생 기술직으로 일해 온 사람더러 차별적인 환경에서 상품판매를 하라니 말예요. 또 우리는 실적이 어떻건 무조건 D등급(최하등급)을 받는다는 거지요.”(KT는 S-A-B-C-D등급으로 인사관리를 하고 있다)
비단 박씨만의 사례가 전부가 아니었던 것이다. 강씨도 상태가 호전되지 않아 현재 3개월 요양 연장을 신청한 상태다.
“전 산재신청을 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속이 안 좋아 병원에 다녔어요. 스트레스로 위경직이 일어나 아무것도 못 먹기도 하고, 탈모도 발생했고요. 화를 이기지 못해 성격도 공격적으로 변했어요. 하지만 병원선 소화기관 문제가 아니라더군요. 곧 정신과병원에 갈 겁니다.”(전 충북본부 상판팀원)
“저도 아직 정신과병원을 찾진 않았지만 너무 힘들어요.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얼굴이 벌개져요. 가슴은 늘 한으로 맺혀져 있죠.”(전 전북본부 상판팀원)
KT는 상판팀을 해체시키고 그를 ‘시험실’로 배치했지만 그는 여전히 1년5개월째 집에서 1시간 거리의 하루 4번 밖에 버스가 오지 않는 전북의 ‘한 지역’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저도 올해초 몇 번 정신과병원을 찾았어요. 언젠가부터 감시·미행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죠. 회사는 차를 어디다 세워뒀는지도 알고 있더라고요. 그때부터 차 타고 다니다보면 뒷차를 보게 되요.”(충북본부 한숙자(가명)씨)
그는 상판팀이 만들어지면서 집에서 왕복 5시간 거리의 지역으로 배치를 받았다. 거기에서만 영업을 해야 했다. 그도 시간별로 일일활동계획을 작성하고 그대로 안 하면 ‘지시사항 불이행’으로 ‘경고’<사진>를 받기도 한단다. 그는 2번 경고를 받았다.
이날 자기 이야기들을 하면서 눈물을 보이는 이들도 간간히 보였다. 또한 처음엔 담담히 자기를 이야기를 시작했다가 결국 목소리가 떨려 말을 잇지 못하기도 했다.
KT 사례, 사회에 경종을 울리다
지난달 CBS 보도에서는 금호석유화학에서도 KT에 이어 구조조정에 저항하는 일부 직원들을 무기한 교육을 보내 결국 각종 정신질환을 유발시켜 산재승인을 받은 사례가 소개됐다. 이에 따르면 2002년 구조조정을 당한 이들은 투쟁 끝에 복직됐으나 이후 5개월 동안 회사 연수원에서 ‘보복성’ 교육을 받다가 정신질환을 얻었다. 이후 이들은 극도의 불안증세, 불면증, 급격한 체중감소 등 KT의 박씨가 겪는 증상을 고스란히 겪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최근 은행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서 조흥은행과 외환은행은 구조조정 대상자를 ‘신규고객영업팀’이나 ‘특수영업팀’을 신설해 이들을 따로 관리하며 차별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본지 21일자 참조> 이른바 ‘신종구조조정’ 수법으로 통하고 있는 신규부서 관리로 인해 해당 노동자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모멸감을 느끼며 살고 있다고 밝혔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KT 상판팀과 비슷한 유형이다.
구조조정만이 아니더라도 회사의 노동자 감시, 미행, 위치추적 사례로는 대표적인 국내 유수의 S사가 꼽히고 있다. 또 청구성심병원의 조합원 차별과 탄압에 따른 정신질환으로 집단산재승인을 받은 사례와 지하철노동자들이 정신질환인 공황장애로 산재승인을 받은 사례는 노동자가 더 이상 업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KT 사례가 우리사회에 울리는 경종을 무심코 넘기기 어려운 이유다.
21일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정신질환으로 산재승인 된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27건, 2001년 38건, 2002년 48건, 2003년 85건, 2004년 88건(추가 가능성)으로 나타났으며 이 중 업무 스트레스가 원인인 경우는 2000년 9건, 2001년 18건, 2002년 23건, 2003년 16건, 2004년 44건(추가 가능성)으로 전체 정신질환 산재건수의 절반이나 차지했다. <표1 참조>
<표1>연도별 정신질환 산재승인 및 업무스트레스(원인)건
연도 정신질환 산재승인(건) 업무관계스트레스 원인(건)
2000 27 9
2001 38 18
2002 48 23
2003 85 16
2004 88+α 44+α
* 2004년 건수는 분석 통해 승인건수 추가할 예정. <자료제공=근로복지공단>
근로복지공단 한 관계자는 “이는 그만큼 정신질환에 대한 인식의 전환에 따라 신청이 늘어났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조정 등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대인관계나 직무관계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정신질환으로 이어지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KT 상판팀 고통은 끝나지 않았다
그러나 KT 상판팀의 고통은 끝나지 않은 듯 보인다. 회사는 상판팀 해체 이후 당사자들을 모두 일반 업무에 복귀시키고 ‘절대 스트레스를 주지 말라’고 내부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다.
“절대 스트레스 주지 말라는 것은 여전히 우리를 별도 관리하고 있다는 것 아니겠어요. KT가 쉽게 구조조정을 멈출 조직이 아니잖아요. 또다시 구조조정이 시작된다면 우리가 일차적 대상이 되지 않겠어요. 그 불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어요.”(전 충북본부 상판팀원)
현재 차별 대우를 받아왔던 피해자들은 이번 사태가 잠잠해지면 자신들에게 ‘퇴출 프로그램’이 다시 적용될 소지가 많다며 여전히 직장에 대한 불신과 퇴출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고통은 지난 13일 광주에서 열린 ‘전남북 KT 인권탄압 증언대회’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날도 새로운 부서발령 이후에도 계속되는 고립에 대한 정신적 고통이 토로됐다.
이 쓰라린 기억은 지금도 이들을 옭죄고 있었던 것이다. 대표적인 예로 상판팀원들은 교통사고를 자주 ‘일으키는’ 편이라고 한다. 그들은 늘 누군가 자기를 미행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뒤차를 따돌리겠다는 심정으로 교차로에서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기 전 빠르게 질주하다보니 비슷한 사고가 왕왕 발생한다는 것이다. 앞서 충북본부의 한씨의 경우도 차를 몰다 자주 뒤를 돌아보는 것도 이와 비슷한 증상이다.
인의협 소속 배기영 전문의(신경정신과)는 “직접 만나본 상판팀원들은 상상키 어려울 정도의 차별 속에서 죽고 싶을 만큼 우울해하는 등 심각한 수준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며 “산재승인 된 4명 이외에도 상당수는 정신과 이상이 있다는 판단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들은 자신의 문제로만 여기지 말고 적극적인 치료를 받아야 하며 회사도 이들이 원활히 직장생활을 할 수 있도록 복귀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KT, 대책 없는 공기업 구조조정 ‘선례’
그러나 KT는 지난 산재승인에 대해 “납득할 수 없다”며 근로복지공단을 대상으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상판팀 정신질환 문제에 대해 적극 대응하고 있다. KT 언론홍보팀 김철기 과장은 “정신질환 산재인정에 대한 원인별 해석은 당사자들과 회사간 다르다”며 “상판팀은 정식조직이 아닌 상판이란 업무의 일환이며 이들은 거의 일 안하고 사무실도 잘 안 나오는 등 스스로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다 산재신청을 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근로복지공단의 한 관계자는 “우리는 업무상 질환이란 기본적 입장을 갖고 있다”며 “업무상 질병의 종류가 산업사회의 다양화에 따른 역작용으로 정신질환으로 발전되는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도 이런 사례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KT, 대표적인 공기업이었다. 그 공기업의 민영화와 구조조정의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KT 정신질환 사례는, 그 선례가 된다는 점에서, 정부도 깊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실제 KT는 93년부터 민영화를 추진, 10년만에 정부 소유 100%에서 현재는 정부지분 0%, 해외투자자지분 49%의 완전민영화(2002년)가 된 상태다. 때문에 구조조정 역시 IMF 이후 상시적으로, 대규모로 이뤄져왔다. 97년 이후 모두 2만5천명 가까이 ‘나간’ 상태다. <표2참조>
<표2> 민영화 과정에서 KT퇴직인원 현황(자연감소 포함, 97년 이후)
연도 1997 1998 1999 2000 2001 2003 계
퇴직인원 1,959 3,203 9,335 2,244 1,968 5,712 24,412
<자료제공=KT상품판매전담팀 인권백서>
이상윤 노동건강연대 기획위원(산업의학)은 “KT 사례는 비단 상판팀만의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되며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대책 없는 구조조정이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가에 주목해야 한다”며 “기업의 구조조정과 그 과정에서의 차별과 감시가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짚어보고 기업의 불법을 근절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연윤정 기자 yon@labortoday.co.kr
2005-03-22 오전 9:51:23 입력 ⓒ매일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