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기금의 ‘최우수 기금’ 선정을 눈물나게 축하하며

얼마 전 노동부는 보도 자료를 통하여 산업재해보상보험 및 예방기금(이하 산재보험기금 이라고 함)이 기획예산처가 심의한 2002년 기금운용평가 중 복지,노동 분야에서 “최우수 기금”으로 선정되었음을 자랑스럽게 발표하였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의 노동 문제의 심각성을 고려해 반가운 소식이다. 게다가 산재보험이 국민의 4대 보험 중 하나임과 동시에 노동자들에게는 필수적인 복지보험임을 가늠해볼 때 이번 산재보험 기금의 최우수 기금 선정이 갖는 의미는 요즘과 같이 노동자들의 한숨 소리가 커져만 가는 현실을 생각해볼 때 정말 반가운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실재로 9백억 가까이를 호텔과 골프장 사업에 쏟아 붓고도 적자에 허덕이는 국민연금이나, 경륜사업에서 매년 4백억 원 이상을 출연 받으면서도 집안 내부에서만 열심히 나눠먹고 있다는 청소년육성기금1) 등 나쁜 소식만을 접해듣고 있던 우리에게 산재보험기금의 “최우수 기금”선정 소식은 정말 반가운 것이다. 그러나 산재보험 기금 운용에 대한 상세한 내막을 알게 되면 그 반가움은 사라지게 된다. 매년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 지적사항인 산재보험기금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의 구설수에 올랐고, 비록 >이라는 금딱지를 가슴에 달고 있는 지금도 상황은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

산재보험은 노동자의 업무상의 재해를 신속 ·공정하게 보상하기 위하여, 사업주의 강제가입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으로써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는 4대보험 중 하나이며 동시에 노동자에게는 가장 중요한 복지보험이다. 근로복지 공단에서 그 실질적인 운영을 하고 있는 산재보험은 턱없이 낮은 사전승인제와 심사율, 집행과 감독을 동시에 하고 있는 근로복지공단의 폭압적인 2중성, 산재보험심사위원회의 형식적인 심사 등 근본적으로 많은 폐단을 안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다른 문제점은 잠시 비켜두고 산재보험의 기금운용에 대한 문제만 살펴보도록 하겠다.

올해 5월에 있었던 노동부의 2004년 산재보험기금 예산 운용에 대한 사업설명과 기금 운용 계획안을 살펴보면 내년에 편성된 산재보험기금의 규모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산재보험기금 운용에 있어서 급여의 보장성을 강화하여 정규 노동자뿐만 아니라 비정규노동자의 생존까지도 보장할 수 있어야 하고 산재노동자의 원직장복귀 등, 산재노동자의 재활을 강화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목적임을 생각할 때 기금운용 방향 역시 이러한 개혁요구에 부합되는 내용으로 계획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내년도 기금운용은 25,361억 원으로 그 운용규모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행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인 평균 20%에 달하는 요양급여의 본인부담률 폐지, 휴업급여를 평균임금의 90% 수준으로 인상, 장애급여를 50% 인상하는 등 산재보험의 보장성을 강화하기 위해서 ‘04년도 기금운용 계획대비 약 6,200억원의 수입 확대가 필요하다.

산재보험법에서 정하고 있는 국가 의무 준수를 보면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조에 의해 국가는 보험사업의 사무집행비용(근로복지공단 인건비 및 기관운영 경비)을 일반회계에서 부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어, ‘04년도에는 1,365억원이 일반회계에서 전입되어야 하나 운용계획안에는 57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 따라서 ‘04년도 계획대비 1,308억원을 일반회계에서 추가 부담하여, 법률이 정하고 있는 국가의 의무를 준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동법 제80조에 따라 산재예방사업에 대한 일반회계 전입금의 규모를 기금지출 총예산의 3%로 규정하고 있어, ‘04년도에는 1,754억원이 일반회계에서 전입되어야 하나 운용계획안에는 86억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졌다.2)

또, 2004년 기금운용과 관련하여 노동부 지방청사를 건립하는데 기금 일부를 전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기금 운용 계획안에 따르면 양산과 원주에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의 합동 지방청사를 건립하기 위해 부지매입과 건축공사비 명목으로 각각 51억원과 16억원의 예산을 책정해 놓고 있다. 이에 관하여 노동부의 한 관계자는 지방청사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을 건립해서 노동자의 산재치료에 도움이 되기 위해서 한 것이라고 해명하지만, 산재보험기금의 용도는 ‘보험급여의 지급, 산재예방사업 그리고 재해노동자 복지증진 등’으로 법률로 정해져 있다. 따라서 노동부지방사무소 건립에 기금(67억원)을 사용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일 뿐 아니라 산재노동자의 치료와 생활보장에 지급되어야 할 보험기금을 마치 국가예산처럼 생각하는 정부의 부도덕한 행태에 불과한 것이다.3)

또 산재장애 노동자의 실제 규모에 비해서 재활사업관련 예산은 턱없이 부족한 것으로 책정되어 있다. 통계적으로 볼 때 매년 산업재해로 인하여 약 2만5,000명이 추가로 영구신체 장애인이 되고 있으며 이들 중 대부분이 실업상태에 있는 등 생존의 위협에 고통 받고 있다.4) 따라서 산재장애노동자에 대한 직업훈련과 원직장복귀는 매우 절실한 생존권적인 요구임이 분명하다.

한국노동연구원에서 2002년에 발표한 ‘산재장애인의 재활프로그램에 관한 연구’ 중 산재장애인의 직업복귀율에 관한 설문 조사를 살펴보면 산업재해를 당해 현재 직업이 없는 미취업자의 경우를 살펴보면 67%에 달하는 산재장애인이 취업을 희망하고 있으며, 신체장애 등급별로 살펴보면 장애등급이 1―3급의 경우 95%에 달하는 산재장애인이 현재 직업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산업재해를 당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취업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취업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들 중 대다수의 경우 취업을 희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04년도 기금 운영계획에는 단지 2,7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직업훈련 비용지원을 계획하고 있을 뿐이고 훈련수당 역시 최저임금에도 턱없이 부족한 35만원 정도로 책정되어 있어 그 실행의도와 성과를 의심케 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 본 것은 단지 2004년 산재보험기금 운용 계획안에 나타난 문제점일 뿐이다. 비단 이것만은 아니다. 산재보험기금 운용에 대한 많은 문제점은 그동안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많은 비난을 받아왔다. 심지어 2000년에는 산재보험기금을 소관부처의 경비로 사용된 것이 폭로되었던 적도 있었다. 현재 산재보험은 임금노동자의 20%에 해당하는 276만명이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비정규직, 영세사업장 근로자 등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이다. 아직 우리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산재보험기금은 어느 먼 나라의 꿈과도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얼마 전 종로에 있던 한 친구가 전화를 해서 종로에 불이 났다고 신기하다는 듯이 알려준 적이 있었다. 까만 연기가 피어올라서 불이 난 줄 알았던 그 친구가 본 연기의 실체는 사실 그 날 종묘공원에서 있었던 노동자 대회에서 근로복지공단 비정규직 노조 광주본부장인 이용석씨의 몸을 태우는 연기였었다. 뒤늦게 사실을 알게 된 그 친구는 굉장히 놀라는 눈치였지만, 벌써 한 달여 사이에 몇 명이 자살을 하고 또 몇 명이 분신을 기도했는지를 알 수 없을 만큼 지금의 우리나라 노동계는 안타깝고 절실한 상황이다. 입만 열면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고 떠들었던 어느 회장님의 말은 “기업이 뇌물주기에 좋은 나라”라는 하나도 우습지 않은 우스개 소리가 되어버렸고, 강성노조가 우리나라를 망친다고 하는 보수 언론의 기세는 아직도 등등하다.

산재보험은 노동자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그것은 지금처럼 어려운 노동현실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동시에 누구보다 산재보험이 허구라는 것을 노동자들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과연 산재보험기금의 최우수기금선정은 노동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여겨질까? 이런 노동계의 상황 속에서, 노동자들의 슬픔 속에서 오히려 더욱 무거운 느낌으로, 또 더 허탈한 마음으로 생각되지는 않을까?


각주

1) 경향신문 2003년 4월 10일자

2) 노동부의 2004년도 산재보험예방기금 운용계획안에 대한 민주노총의견

3) 민주노총 조태상 산업안전부장. 조태상 부장의 말에 따르면 민주노총에서 위 사안에 대하여 노동부에 질의한 결과 그저 지켜봐달라는 식으로 정확한 해명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한다.

4) 2003. 5. 27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