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 현황
가. 산재예방체계의 문제
산업보건영역에서 산재예방체계는 그 운영주체나 내용면에 있어서 상당히 독자적으로 오랫동안 운영되어 왔다. 그러나, 그 역사성과는 달리 새로운 시대적 요구에 조응하지 못하는 고전적인 유해물질(소음, 분진, 중금속, 유기용제 등) 중심의 직업병 예방체계와 그로 인한 매우 낮은 직업병 진단율(0.07~0.09%) 문제는 산재예방체계의 난맥상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이와 연관되어, 근래에 사회적으로 문제가 불거진 노동력 손실이 큰 새로운 질환들(예, 직업성 근골격계 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에 대한 예방 및 조기진단 체계의 부재 문제와 실제로 업무상 질병의 예방보다는 건강검진사업(2차 예방인 조기진단 사업)을 통한 수익창출에 골몰하고 있는 산업보건사업기관의 도덕적 해이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묵과할 수 없는 중대한 수준으로까지 부각되어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고령화되어가는 노동인구에게 가장 흔하게 발견되는 만성질환들(예, 생활습관 병)에 대한 산업보건 예방서비스 부재 문제는 향후 국가의 보건부담의 크기 면에서 매우 중대한 논의주제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나. 산재요양체계의 문제
지금까지의 산재요양체계에는 제공되는 의료서비스 수준에 따른 자연스런 역할 구분이나 적절한 분화과정이 없었다. 이는 일반 보건의료서비스 영역의 문제를 산재요양체계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산재요양체계는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제도 등 자신만의 독자적인 요양체계를 있으므로 이러한 비판에 있어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특히 최근에 산재보험기금이 고갈되면서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의 부적절한 요양서비스 제공문제는 이미 노동계, 경영계, 정부 모두로부터 심각하게 주목받고 있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1, 2차 수준의 민간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의 수입증대를 위한 요양의 장기화 경향이나, 부적절한 과잉 시술(예, 불필요한 척추수술 등), 그리고 산재의료 내 전달체계 부재 상황 등은 적극적인 개선을 요구받고 있다. 반면에 대표적인 종합전문요양기관들(서울대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중앙병원 등)이 병상회전율 둔화로 인한 수입 감소를 이유로 산재의료기관으로 지정되는 것을 회피하는 문제 등은 여전히 풀어야 할 또 다른 측면의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기도 하다.
다. 산재예방을 위한 정부정책 집행구조의 문제
현재까지의 자료를 확인해보면 다음의 표와 그림에서 보이듯, 한국 산업안전공단으로 출연하는 산재예방비용이 늘수록 오히려 작업관련성 질환은 증가하는 현상이 관찰되고 있다. 이는 한국산업안전공단의 산재예방사업 효용성에 대한 의구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한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 과연 현재의 산재예방 담당기관이 미래사회적 관점에서 볼 때, 산재예방을 위한 포괄적이고 통합된 대처가 가능한 조직(방식)인지 진지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라. 사업장내 보건관리 체계의 와해
정부는 1997년 말 국가경제위기 이후, 기업의 부담을 덜어준다는 명분 하에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 선임규정을 완화시켜 주었다. 그 결과 2003년 현재, 보건관리자를 선임하였다고 보고한 8,527개 사업장 중에서 6,439개(75.5%)가 외부기관에 ‘위탁’하는 방식으로 보건관리를 하고 있으며, 이러한 다분히 형식적인 관리제도(와 내용)는 현장에서 업무상 질병과 만성 질환(생활습관 병) 등에 대한 보건학적 관리가 부실해질 수밖에 없게 하는 가장 주요한 이유로 확인되고 있다.
마. 국가 공공의료기관으로서 산재의료관리원의 역할 부재
산재의료관리원 산하 산재병원들은 산재환자 진료, 작업관련성 질환의 평가, 산재 및 직업병 진료표준의 설정 등 공공이 담당해 주어야 할 역할에는 소홀한 채, 수익증대를 통한 생존만을 꾀하여 왔다. 물론 과거 탄광을 중심으로 그 존재가치가 십분 발휘된 적이 없는 것은 아니며 근본적으로 공공기관의 효용성을 수익성으로만 평가하는 평가 잣대가 1차적인 문제이기는 하다. 그러나 산재환자를 통한 수입이 전체의 50% 밖에 되지 않고 있고 산재의료관리원이 최근에 수립해온 일련의 발전계획과 자구책을 검토해 볼 때 결국은 산재의료관리원도 산재요양기능에 중점을 두기 보다는 수익창출과 생존을 위한 기존의 일반적인 의료기관 모형을 택하려고 한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하고 있다. 물론, 산재의료와 관련되어 전문화된 국가중앙의료기관이 없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유일한 대안기관으로서 산재의료관리원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인 배려가 전무하였던 것 또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 과정과 결과로서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 일반병의원, 산업보건기관 등과의 역할중복과 비효율의 문제는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해결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바. 보험급여(휴업급여, 요양급여)중심의 산재보험제도
우리나라 산재보험재정의 세출 요소별 구성비를 보면, 보험급여가 85-90%를 구성하고 있으며, 재해 예방비가 일시적으로 10%를 상회한 일부기간을 제외하고는 ‘예방’에 대한 비용 또한 대부분 5%내외를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산재의료에서 그 비중이 상당히 중요한 ‘예방’과 ‘재활’에 대한 비용지출은 매우 적거나 전혀 없는 대신에, 주로 환자의 소득을 보상하는 ‘휴업급여’와 진료관련 비용으로 지급하는 ‘요양급여’ 등의 항목들에 대부분의 산재보험 재원을 투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으로 볼 때 급격한 재원고갈이 발생할 수 있는 상당히 우려스러운 구조라고 판단된다.
2.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의 개선방안
가. 산업보건과 관련된 정부정책의 추진주체 신설
보다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산재예방 정책을 추진하려면 산업안전보건청 1)의 신설이 반드시 필요할 것으로 보이며, 산재요양 정책의 효과적인 집행을 위해 산재의료관리원을 단순한 요양병원 기능만을 가지고 있는 현 체제에서, 재활과 장기요양에 보다 정확히 초점이 맞추어지고 전문적인 지침 제공 등 국가의료기관으로서의 역할을 가질 수 있도록 재편할 필요가 있다. 또한, 재해와 직업병 관련 원형을 제시할 수 있도록 기능을 재편하고, 여기에 미래지향적인 기능인 산업보건연구기능을 부가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나. 산재보험 급여항목(예방급여, 재활급여) 신설과 지출 요소별 구성비 개선
산재보험 자체에 ‘예방사업 관련 항목(산업보건 예방사업과 관련된 항목)’과 ‘재활급여(의료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를 신설할 필요가 있다. 외국의 경우는 재활을 위하여 상당 수준(독일의 경우는 25% 이상)의 재정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반하여, 우리나라의 경우는 내용적으로 요양급여에 포함되어 있는 일부 물리치료 등 재활 의학적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공식적으로 외국과 비교가 가능한 재활사업(의료재활, 교육재활, 직업재활, 사회재활 등)으로 투입되는 산재보험 재정이 전혀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전체 산재의료체계에서 이러한 ‘재활사업’의 비중을 단계적으로 증대시키기 위해서는, 재활사업으로의 투입비용이 결국은 전체 보험급여(요양급여와 휴업급여 등) 비용을 충분히 절감시킬 수 있음이 알려져 있는 만큼, 현행의 소극적이고 부적절한 재활서비스 관련 (수가)제도를 철폐하고, 보다 과감하고 적극적인 새로운 수가개발과 비용지불을 통해 질 높고 풍부한 다양한 ‘재활사업(서비스)’ 공급을 유인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와 직업병이 발생한 시점부터 객관적인 기준에 합당하면 담당주치의의 소견에 따라 별도의 승인절차 없이 요양급여와 휴업급여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한데, 만약 사후평가 과정에서 승인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에는 근로복지공단과 건강보험공단이 사후 정산하는 방식을 도입 2)하는 것도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다.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제도의 개정
전국에 있는 50여개의 종합전문요양기관을 재해전문병원 3)과, 직업병 전문병원 4)으로 구분하여 신청할 수 있도록 유인하고, 이와 관련된 산재보험수가 개선을 통한 적극적인 참여를 촉구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전국에 5,000개 이상 지정되어 있는 1, 2차 병의원의 경우는, 일부 특화된 기능이 있을 경우 전문병의원으로, 나머지 대부분의 경우는 장기요양병의원으로 구분하여 지정 운영토록 함으로써 현재 산재의료체계의 난맥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
라. 산업보건 예방사업의 다양화
현행 산업보건 예방사업은, 근로자 일반 및 특수건강검진, 작업환경측정, 보건관리대행 으로 나눌 수 있으나, 그동안 이를 통해 예방적인 효과를 얻지 못하여 왔다. 이를 보다 실효성 있는 ‘직업병 및 만성질환 예방사업’과 ‘사후 질환관리 사업’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
마. 지역보건센터의 구축
전체 근로자의 절반이 넘는 영세사업장 근로자 등 산재의료에서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고 또한 법제도 내에서 실제적으로 관리하지 못하여 방치되어 있는 상당수의 고 위험집단에 대한 집중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혹은, 인근) 지역 내 기존의 일차의료자원(예를 들어, 보건소)을 활용하여 이를 이용한 예방보건사업 및 지역 의료자원 연계사업을 수행하고 이를 위해서 조직구축, 재원조달, 서비스의 내용정비, 인력수급 등의 과제들을 단계적으로 충실하게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다. 만약에, 영세사업장이 밀집되어 있는(혹은, 인근) 지역 내 연계할 의료자원이 없을 경우에는, 처음부터 산업보건의 특성이 충실히 반영되어지는 지역보건센터를 신설하도록 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바.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 배치 확대 및 보건관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
일정 규모(예, 100인)이상의 사업장의 경우는 현행 규정을 개정하여 전담 보건관리자를 반드시 배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동시에 보건관리자에 대한 자격조건(의료인)과 직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로자 건강진단기관, 지역보건센터, 전담 보건관리자들이 사업장내에서 보건관리사업(이들이 주도할 수 있는 직업병 및 만성질환 예방사업이나, 건강증진사업, 사후 질환관리 사업 등)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사업비를 지원하여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사업에 대해서는, 매년 적절한 사업계획 수립과 사업수행 평가를 통해 그 성과와 개선안을 모니터링 하여 보다 발전적인 제도 개선이 이루어지도록 할 필요가 있다.
사. 노동부내 ‘직장 건강증진위원회’ 설치를 통한 건강증진 도모
노동부가 중심이 되어, 타 부처와 함께 만들어가는 사업으로서 직업별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표준화 하고, 또한 직장과 지자체에서 일정부분 재정지원을 유도하고, 대상자가 일정 이상의 건강수준에 도달하면 그 이후는 자발적으로 건강증진 프로그램을 수행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지원해 주는 프로그램 등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아. 보건복지영역과의 긴밀한 연계체계 확보
국가중앙의료원과의 긴밀한 업무연계가 필요하며, 이를 통해서 산재와 직업병에 대한 표준진료지침 등을 마련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질병관리본부와 산업안전보건청(가칭) 간에 업무협의가 필요한데 통합적인 국가정책에 대한 의견교환과 정책집행과 관련하여 기술적인 지원이 불가피할 것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국립대병원, 재활, 정신, 요양, 응급 센터와 산재의료관리원 및 산재지정 의료기관과의 연계는 실제적으로 환자 의뢰 등을 통한 역할 분담을 수행함으로써 가능할 것으로 판단된다. 보건소와 근로자 건강진단기관, 지역보건센터, 사업장 보건관리자와의 연계 문제는 보건사업 수행과 관련하여 기술지원, 교육지원, 인력지원 등의 긴밀한 연계를 가짐으로써 해결해야 할 것이다.
3. 우리나라 산업보건체계개선 추진전략
가. 단기 과제
산업보건 예방사업을 다양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고전적 유해물질 중심의 예방사업(특수건강진단 등)에서 고령화되어가는 노동력에서 가장 보건학적으로 중요성이 높은 만성 성인병 질환과 새롭게 발생률이 급등하고 있는 작업관련성 질환(예, 근골격계질환, 직업성 뇌심혈관계 질환 등)등에 관한 예방사업 내용을 개발해야 한다.
또한 지역보건센터를 구축하되 상황에 따라서는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지역보건과 관련된 센터(예, 보건소)에 사업장 예방보건서비스 제공, 지역 내 의료자원연계 등 산업보건서비스 기능을 부여하고 운영하도록 지원하고, 일부 지역보건조직이 없는 지역에 대해서는 시범적으로 지역보건센터를 신설하여 운영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업 규제완화의 일환으로 시행되었던 보건관리자 선임기준 완화조치는 일정한 규모 이상의 사업장에 대하여 전담 보건관리자 6)의 선임을 다시 확대토록 함으로써 원칙적으로 현장 중심의 보건관리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사업장내 보건관리사업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서 사업장내 전담 보건관리자가 선임되어 있는 중소기업과 중소규모 사업장의 보건관리를 담당하는 산업보건기관 혹은 지역보건센터를 대상으로 하여 산업보건 예방사업 시행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추진토록 도와줄 필요가 있다.
나. 중장기 과제
중장기적으로는 앞서 말한 바 있듯이, 산재보험 급여항목(예방급여, 재활급여) 신설과 지출 요소별 구성비 개선을 추진하고, 산업안전보건청 신설과 산재의료관리원의 혁신을 통해서 정부의 산업안전보건정책 추진주체를 새롭게 건설하고,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들을 재해전문병원, 직업병전문병원, 재활전문병원, 장기요양 병의원 등으로 분화시켜 그 역할분담을 다시 할 필요가 있다. 또한, 지역보건센터 모형을 구축하되, 지역보건과 관련된 센터가 없는 지역에 대하여, 산업보건서비스 기능이 충실한 새로운 모형의 지역보건센터 광범위하게 신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현행과 같이 노동보건과 일반보건이 이원화 되어 운영됨으로써 파생되는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보건복지 영역과의 긴밀한 연계체계 확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각주)
1) 기존의 1200명이 넘는 조직규모를 가지고 있는 한국산업안전공단과 노동부의 산업안전국의 기능을 발전적으로 통합할 필요가 있음
2) 다만, 이러한 접근을 전면적으로 할 것인가는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함. 사실, 산재보험은 요양기간 중에 소득보상이 이루어지나 건강보험은 그렇질 못하므로 양 체계 간에 커다란 불균형이 존재할 수 있으므로, 현실적 여건에 맞게 단계적으로 실행 가능한 영역에서부터 하나씩 확대해 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판단됨
3) 일반외과, 성형외과, 흉부외과, 신경외과, 정형외과, 마취과, 방사선과, 중화상 치료, 하반신 마비, 수지 접합, 골수염 담당 전문과 등이 있어 고도의 외과적 접근이 가능하고 의료재활을 할 수 있는 병원
4) 직업관련성 평가 및 치료 등을 수행하는 병원
5) 2002년도 우리나라 의료기관수는 총 44,029개소로 종합병원 284, 병원691, 의원23,299, 치과병원 80, 치과의원 11,120, 한방병원 1345, 한의원 8,097개소 등임. 그 중에서 12.8%에 해당. 종합전문요양기관 지정율은 90% 수준으로 전국 50개소 중 6개소(서울대병원, 가톨릭 강남성모병원, 서울중앙병원, 삼성서울병원, 원자력병원, 신촌세브란스병원)를 제외한 44개소이며, 서울, 경인지역은 80%, 그 외 지역은 100% 지정․운영 중임. 2003년 현재, 산재보험 지정의료기관은 총 5,566개소로 줄어듦.
6) 의료인으로 정하고 직무에 대해서도 명확히 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