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산업재해 발생건수가 감소됨에도 불구하고 파견근로 확대와 비정규직 증가 등 현재 우리나라 산업현장이 당면하고 있는 다양하고 복잡한 여건 속에서 영구적인 신체장애를 입게 되는 노동자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에 있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산재 산고를 당한 노동자 10명 중 4명이 노동능력이 완전히 또는 상당부분 손상된 산업재해 장애인이 되어 노동시장으로부터 탈락의 위험을 갖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노동능력에 대한 상실은 곧바로 산재 장애인들의 경제적 빈곤화와 이로 인한 심리적 좌절감 나아가 가족 간의 갈등 및 파괴로까지 연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산업재활 정책은 의료적 치료나 현금위주로 운영되고 있다. 정작 산재 노동자에게 필요한 직장 복귀 및 사회복귀를 위한 직업재활 그리고 사회심리재활 등 전인적 재활을 위한 정책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감안하여 본 글에서는 산재 장애인이 장애 이후 직면하게 되는 경제적 빈곤 및 심리적 소외감 그리고 가족 갈등의 상황을 짚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산재 장애인을 위한 재활정책을 산재 장애인의 수요자 입장에서 보다 필요하고 적극적인 정책적 대안이 무엇인지를 지적해보고자 한다.
2. 산업재해 노동자의 경제적 빈곤 및 심리적 소외
산재로 인해 장애를 입게 된 노동자들은 산재 이후에 겪게 되는 신체적인 변화 그리고 가정 및 직장을 포함한 환경적 변화 속에서 산업재해 이전의 생활 상태로 복귀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어려움 중 경제적 빈곤화와 심리적 소외감으로 인하여 산재 장애인이 일반인과 함께 지역사회로 통합되어 살아가는 데에 제약이 따른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산재 장애인이 장애 이후 겪게 되는 빈곤화와 그로 인한 사회적 소외감이 크게 부각되어오고 있지 못한 실정이다.
실제로 많은 산재 장애인들이 산재 이후 사회경제활동으로의 복귀가 좌절되고 이로 인해 경제적 위협에 처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이 산재병원에서 치료 중이거나 직업재활원에서 재활훈련 중인 산재 장애인 1천 231명을 대상으로 직업재활 실태조사를 실시하였는데, 그 결과 조사대상자의 87.9%가 ‘복직이나 재취업 등 직업 문제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조사대상자의 3/4(77.3%)이상이 장해판정을 받은 뒤 무직 상태로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83.1%는 산재를 입은 뒤 ‘가정경제가 악화되었다’고 응답하였다.
가정경제의 악화
무엇보다도 근속기간 1년 미만의 미숙련 노동자의 재해율이 높게 나타나 산재 이후 재취업이 더욱 어려운 것이 현실인데, 실태조사에 의하면 2003년 산재를 입은 노동자 중 과반수(59%) 이상이 1년 미만의 미숙련 노동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경험 미숙으로 산재를 입은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는 곧 산재를 입은 후 재취업이 어렵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숙련된 기술과 지식을 익히기 이전에 사고를 당하기 때문에 그만큼 직장으로의 복귀를 포함한 직업재활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산재 이전과 이후의 직업분포를 살펴본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박수경, 1999), 1-7급 장애인의 경우 10명 중 8명 이상은 재취업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산재 이전의 경우 기능직 노동자나 단순노무직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60% 이상이었던 반면, 산업재해 이후의 경우 이들 대부분이 재취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경증장애인 8-14급의 장애인 경우, 중증장애와 마찬가지로 기능직 노동자와 단순노무직 노동자에 60%이상이 종사하였으나, 절반 이하(약 25%)만이 취업한 것으로 나타났다.
산재로 인해 겪게 되는 어려움은 당사자의 문제에 국한되지 않고 가정문제로 확대된다. 산재 장애인들이 부양가족을 둔 가장 위치에 놓여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산재 현황을 보면 산재 장애인의 약 90%가 남자이고, 30대 이상의 경우가 80%이상으로 가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노동부, 2002). 더욱이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는 경우도 80%이상인 것으로 나타나(한국장애인고용촉진공단, 1996), 산업재해로 인한 장애발생은 가족전체의 경제적 어려움으로 직결되고 있다.
가정과 사회로부터 소외
이처럼 산재 장애인들의 신체기능의 손실은 산재 발생 이전에 수행하였던 가정과 직장 내에서의 역할을 제한한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만성적인 스트레스와 심리적 갈등을 유발하게 된다. 특히 자존감이 저하되어 자포자기하는 심정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장애로 인해 신체적 활동성이 저하되고 재취업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동시에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까지 경험하게 되어 더욱 더 외부 출입을 하지 않게 된다. 결국 가족이나 친구, 친척, 직장동료 등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단절되는 등 가정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소외된다.
이 속에서 산재 장애인의 가족은 가장의 실업으로 인한 경제적 곤란, 장애로 인한 역할 변화 및 부담으로 인해 만성적 스트레스 등을 겪게 된다. 곧 가족 간의 갈등으로 연결될 수 있다. 심한 경우 가정이 파경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산재 장애인들이 본래의 직장으로 혹은 작업 전환을 통하여 노동시장으로 재취업할 수 있도록, 그리고 노동시장의 진입이 어려운 경우 산재 이후에 경제적 빈곤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한 체계적인 재활정책이 필요하다. 또한 산재 장애인이 겪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 및 가정 및 사회적 관계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예방할 수 있는 재활정책이 함께 연구되어져야 할 것이다.
3. 산업재해 장애인을 위한 포괄적 재활정책의 제언
앞에서도 지적하였듯이 직업복귀 및 소득보장을 포함하여 산재 장애인의 개인적, 가족적, 그리고 사회적 차원에서의 적응 능력을 향상시켜줄 수 있는 포괄적인 재활정책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산재 장애인을 위한 재활정책은 주로 산재보험의 급여조건 및 수준 그리고 의료적 치료를 중심으로 하는 금전적 보상 위주에 국한되었다. 무엇보다도 산재 장애인에게 중요한 직업재활과 심리사회재활 및 가족개입에 대한 서비스가 매우 미비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다시 말하면 산재 장애인에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소득을 얻도록 그리고 동시에 생산적 활동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는 수단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직업재활이 필요하다. 이는 개인적인 차원에서 장애로 인해 겪게 되는 심리적 좌절감을 극복해줄 수 있는 심리사회적 재활과 연결될 수 있으며, 나아가 가족 및 사회적 관계 속에서 겪게 되는 소외감을 극복할 수 있는 중요한 고리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의료적 치료가 중심이었던 소극적이고 협소한 재활정책의 시각에서 벗어나, 산재 장애인의 전인적 재활을 위한 정책적 고려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정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첫째, 산재보험에서 산재 장애인을 위한 직업훈련과 사회재활서비스에 대한 지원수준을 보다 현실화시켜야 할 것이다. 산재보험에서 제공하는 급여는 요양급여와 장해급여가 있으며, 희망자에 한해서 제공되는 직업훈련과 자립작업장, 생활정착금 대부와 자녀학자금 지원 등이 있다. 이 중 산재 장애인에게 필요한 직업훈련이나 사회재활서비스의 경우 1%미만의 극히 명목적인 수준에서 제공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재 장애인의 재활사업비를 대폭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투자의 확대는 단기적 차원에서는 비용 상승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 차원에서 볼 때 산재장애인의 잔존 능력을 최대화시킬 수 있으며 나아가 산재보험금의 지출을 감소시킬 수 있는 효과를 가져 올 것이다.
재활급여 비중의 확대
또한 직업훈련과정을 이수하고 작업 복귀에 필요한 기능을 충분히 갖추었지만 영업에 필요한 자금능력이 부족하여 산재 장애인이 취업에 곤란을 겪거나 자영을 원하는데 개업을 못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생활정착금 대부 금액을 상향 조절하는 것도 필요하겠다. 이 때 무엇보다도 담보능력 부족 등으로 대부가 어려운 현실이 있음을 감안하여, 자영개업을 원하는 수료생을 대상으로 업종, 거주지 등을 고려하려 본인이 희망하는 지역에 점포를 임대․지원함으로써 확실한 직업복귀 기반을 조성할 수 있도록 임대자립작업장 지원 사업을 바탕으로 한 대부사업을 함께 확대해야 할 것이다.
둘째, 직업재활서비스가 취업까지 현실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하는 제도가 강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도 직업재활훈련원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현재 안산과 광주 2곳에 있는 직업재활훈련원의 경우 연간 3천 명 정도 발생하는 1-7급 산재장애인 중 채 10%도 미치지 못하는 수만이 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처럼 현재 우리나라 산재 장애인의 수를 소화하기에는 직업훈련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나 이용 가능한 최대인원 수가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으로 이용하는 산재 장애인의 수는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이는 직업재활 훈련시설의 프로그램 내용이 재취업에 실질적으로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먼저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이 취업과 연계될 수 있도록 노동시장의 수요적 측면을 고려하여 보다 다양화되고 현실화된 프로그램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직업재활훈련원에 직업상담원을 배치하여 산재 장애인의 직업 적성을 상담하고 직업훈련 프로그램에 최대한 적응할 수 있도록 지지해주며, 나아가 직업 결정에 필요한 정보 및 상담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직업재활훈련 프로그램 이후 재취업이나 자영업에 종사하게 되는 산재 장애인이 새로이 변화된 직업 환경 속에서 직장 동료 및 상사 그리고 작업과정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도록 사후관리 지원체계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직업훈련 지원체계의 변화가 요구된다. 근로복지공단에서는 산재 장애인들이 원하는 직업훈련원이나 사설학원에서 직업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3개월에서 1년 이내에 해당하는 직업훈련 기간 동안 지원되는 훈련지원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훈련비 지원수준을 현실적으로 조정해야 할 것이다.
포괄적인 직업재활서비스 및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제공
셋째, 산재 장애인을 위한 심리사회적 재활서비스를 개발하고 제공해야 할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산재 장애인들은 자신들 나름대로의 일반적인 삶을 영위해오다가 어느 날 갑자기 장애를 입게 되어 급격한 환경적 변화를 맞게 된다. 장애를 입기 전과 매우 다른 환경에 갑자기 접하게 됨으로써 심리적인 위축감을 느낄 뿐만 아니라 직업재활 등 주변의 여건이 지지적이지 못하여 심리적 좌절감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 자신이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수용하기 어려워 만성적 스트레스를 느끼며 삶에 대한 자포자기적 상황에 빠지게 된다. 이는 본래의 직장에 복귀하지 못하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원인이 되기도 한다. 산재 장애인의 재취업을 촉진시키기 위해서라도 본인의 장애를 빨리 수용하고 인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도록 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즉 자신의 장애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키우며 자존감을 높임으로써 자신에 대해 긍정적 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심리사회재활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산재병원이나 산재지정병원에서 산재 환자들을 위한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거의 제공하지 않고 있다. 이는 심리사회재활서비스가 산재보험에 수가로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심리사회재활서비스의 현실화를 위해서라도 산재보험에 수가화하는 방안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산재 장애인의 심리적 좌절감은 사회적 관계의 단절을 야기하기도 한다. 실제적으로 산재 장애인의 경우 장애발생 후 기존의 친구 혹은 직장동료들과의 관계가 절반 이상 단절되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러므로 산업재해 발생 이후 산재장애인들의 사회적 지지 체계를 강화시켜줄 필요가 있다. 산재 장애인의 사회적 지지를 위해서는 장애에 대한 심리적 충격을 덜어주거나 정서적 지지를 제공하는 상담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 외에도, 재활스포츠나 취미 활동 등 여가 활용 프로그램이 포함될 수 있다. 이러한 여가 모임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자조 집단을 형성하여 유지시키게 도와줌으로써, 산재 장애인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소외되지 않고 생활해나갈 수 있도록 장려하여야 할 것이다.
산재 장애인의 가족 지지, 사회적 지지의 강화
넷째, 산재로 인한 장애의 발생은 산재장애인 당사자를 넘어서서 그 가족의 심리사회적 갈등을 야기하게 된다. 더군다나 갑작스런 변화 앞에 자아상실감을 느끼게 되는 산재장애인을 보호해야하는 가족들의 스트레스와 보호부담이 가족 체계의 파괴로까지 연결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산재 장애인 본인에 대한 심리사회적 개입뿐만 아니라 가족에 대한 심리사회적 개입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가족이나 주변의 절친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각종 정보와 교육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산재장애인의 가족들에게 장애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교육시키며, 또한 장애발생 이후에 나타날 수 있는 심리적 갈등과 역할 변화의 가능성을 교육시킴으로써 이로 인한 혼란을 감소시켜주어야 할 것이다. 산재 장애인과 가족 사이의 의사소통 및 갈등을 치료해주는 프로그램도 필요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산재 장애인의 신체적 손상을 최소화하고 일상생활능력을 강화시켜줄 수 있는 재활공학 서비스가 필요하다. 한 연구에 의하면, 산재 장애인의 장애 정도 뿐 아니라 일상생활능력 정도도 재취업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원인으로 나타났다(박수경, 1999). 그러므로 산재 장애 후 잔존능력을 최대화하여 일상생활능력의 제약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돕는 신속하고 체계적인 의료적 치료뿐만 아니라 보장구, 재활용구나 편의시설이 개발되고 제공되어져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노동부의 산재의료관리원 산하에 있는 전문연구기관인 재활공학연구센터를 활성화하여 재활공학서비스의 보급 확대 및 질적 향상을 도모해야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보장구 및 기기를 지급하거나 보장구를 구입하기 위해 들어가는 비용을 지원해줄 수 있는 서비스가 필요하다. 그리고 신체 기능의 최대화를 위해 산재장애인이 거주하고 있는 주택내부를 개조할 수 있는 비용을 지원해주는 서비스도 함께 고려해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