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보다 못한 정규직, 편집디자이너
주당 평균 54.9시간 일하고 연·월차 거의 없어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올해로 7년째 편집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는 김소영(33·가명)씨는 인쇄업체가 몰려 있는 서울 충무로의 한 기획사에서 일한다. 주로 명함과 전단지를 제작하는데 연봉은 2천400만원 정도다. 주당 평균 55시간 일하지만 연·월차는 없다.

오랫동안 컴퓨터 앞에서 일하다 보니 항상 손목이나 어깨가 뻐근하다. 특히 시력이 나빠졌다. 밤샘작업과 까다로운 거래처 때문에 받는 스트레스로 만성피로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다고 김씨가 특별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편집디자이너들이 김씨와 비슷한 노동조건을 감내하고 있다.

언론노조 서울경인지역인쇄지부와 서울동부비정규노동센터·민주노총 서울본부 중부지구협의회·노동건강연대는 지난 6월22일부터 한 달간 ‘인쇄골목’으로 불리는 서울 중구 을지로와 충무로 일대에서 편집디자이너 448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한 결과를 최근 공개했다. 우리나라에서 출판·편집분야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한 노동조건 실태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낮은 보수와 잦은 야근”

조사대상자의 평균연령은 33.2세로 남성은 35.9세, 여성은 30.6세다. 남녀 간 비율은 각각 49.3%, 50.7%로 비슷했다. 10명 중 8명은 전문대 이상을 졸업한 고학력자다. 편집디자이너로 취직한 이유 역시 ‘전공했기 때문에’라는 응답이 45%로 가장 많았다. 응답자의 63.9%는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고 있으며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사업장에 근무하는 비율도 30%에 달했다.

응답자의 절반 이상(53.2%0은 경력 5년 이상의 숙련자였으며 4명 중 3명이 이직을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높은 이직률의 배경(복수응답)으로는 낮은 보수(47.9%)와 잦은 야근(41.5%), 업무과다(34.1%)가 지적됐다.

비정규직보다 못한 정규직

고용형태는 정규직이 80.5%로 대부분을 차지했다. 비정규직은 19.1%이며, 이 중 프리랜서가 9.8%였고, 계약직은 8.9%였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조건은 비정규직과 유사하거나 오히려 그보다 못하다.

편집디자이너의 주당 평균노동시간은 54.96시간으로, 지난해 8월 기준 임금노동자 전체 주당 평균노동시간(45.9시간)보다 무려 9시간이 길었다.

이번 실태조사를 진행한 ‘출판·편집 디자이너 실태조사 기획단’은 “장시간노동과 함께 심각한 문제는 불규칙한 노동시간”이라며 “주당 평균 연장근로 횟수는 2.13회로 주 44시간을 기준으로 하면 평균 1회 연장근로시간은 5.15시간으로 나타났으며 대부분 초과근로시 자정을 넘어 퇴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연·월차 휴가를 적용받고 있다고 답한 편집디자이너는 2.7%에 불과했고, 사회보험 가입률도 우리나라 정규직의 평균 가입률을 밑돌았다. 응답자 3명 중 1명은 부당해고나 임금·퇴직금 체불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단 관계자는 “편집디자이너의 노동조건만 놓고 보면 비정규직보다 못한 정규직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고 우려했다.

간강상 주요 문제로는 컴퓨터 작업에 따른 손목결림과 어깨뭉침 등 VDT증후군이 많았고 시력저하와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조사됐다. 김정민 한림대성심병원 산업의학의는 “다른 사무직종과 비교했을 때 VDT증후군 유병률이 높지만 사회적 보호장치는 거의 작동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기획단은 지난 8일 오후 7시 서울시청소년수련관에서 ‘편집디자이너 노동조건 실태조사 보고회’를 열었다. 보고회에 참석한 한 편집디자이너는 “학교에서 교수님이 ‘너희들은 골드칼라(전문직 종사자를 일컫음)’라고 말했지만 정작 현장에서 일해 보니 ‘똥칼라’였다”며 “편집디자니어 스스로 노동조건 해결을 위해 나서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