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학물질 관리 ‘엉터리’ 관리감독도 ‘부실’
금속노조 실태조사 결과 … 전현직 노동부 장관 등 62명 감사원에 고발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가 엉터리인 데다 노동부의 점검이나 감독도 전무해 제조업 노동자들이 무방비로 유해물질에 노출돼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금속노조(위원장 정갑득)가 60개 화학물질 취급사업장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 위반행위가 무더기로 발견된 것이다. 노조는 22일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 이영희 노동부 장관을 비롯한 10명의 역대 노동부 장관을 감사원에 고발했다. 전·현직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장과 각 지방노동청장 등 피고발인만 62명에 달했다.
◇유해물질 정보, 틀리거나 누락=노조는 원진노동환경연구소 등과 함께 지난 2월부터 5월까지 STX조선·현대자동차·파카한일유압 등 60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화학물질 취급·관리에 대한 실태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산업안전보건법을 준수하고 있는 사업장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우선 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유해성과 독성정보를 제대로 공개한 곳은 기아자동차가 유일했다. 나머지 59개 사업장에서는 모두 허위로 작성되거나 누락된 것으로 확인됐다. 법에 따르면 500만원 이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돼 있다.
화학물질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는 물질안전보건자료(MSDS) 교육을 실시한 사업장 역시 단 한 곳도 찾아 볼 수 없었다. 유해 화학물질을 취급할 경우 인체 노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밀폐하거나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도록 돼 있지만 법에 따라 적정 제어풍속을 유지하고 있는 사업장은 50%도 채 되지 않았다. 심지어 발암물질을 취급하는 공정임에도 국소배기장치를 설치하지 않은 사업장도 다수 발견됐다.
LPG·수소·아세틸렌 등 화재·폭발 위험이 있는 가연성 가스 보관상태도 엉망이었다. 노조에 따르면 대다수 사업장에서 폭발 가능성이 큰 가스통이 아무런 경고표지도 없이 작업장 곳곳에 버젓이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법 위반해도 눈감아주는 노동부=문제는 노동부가 이러한 사업장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는 “사업장 화학물질 관리가 엉터리로 돼 있는데도 노동부가 점검조차 하지 않거나 눈감아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지난 95년부터 물질안전보건자료를 사업장에 게시하도록 법으로 명시했지만, 정작 물질안전보건자료의 건강유해성이나 독성정보가 사실대로 작성돼 있는지에 대한 점검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또 노동부가 사업장 감독을 실시했어도 부실하게 진행했다고 노조는 지적했다. 일례로 부산의 ㅇ공장의 경우 노조가 직접 실태조사를 벌인결과 200여건의 법 위반사실이 발견됐다. 그러나 노동부와 검찰이 지난 6월 한 달 간 실시한 산재취약사업장 합동점검에서 이 공장은 ‘세척공정 주변 안전보건표지 미부착’ 1건의 위반사항만 적발돼 9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했을 뿐이다.
노동부 산업안전보건국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노조의 주장을 사실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노조의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사업장에 대한 점검을 실시하겠다”고 말했다.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은 예견된 사고=노조는 이날 감사원 고발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삼성전자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건이나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돌연사 등은 예견된 사고나 다름없다”고 밝혔다. 사업장에서 인체에 유해한 화학물질을 취급하면서도 제대로 관리하지 않는 데다 노동부의 감독마저 부실해 많은 노동자들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다는 주장이다.
박세민 노조 노동안전보건국장은 “화학물질 취급 노동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증상은 피로감과 무력감”이라며 “현장에서는 위험물질로부터 노동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장치가 전무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정갑득 노조 위원장은 “이명박 대통령은 언제나 ‘법대로’를 운운하면서 정작 정부는 ‘법대로’ 사업장을 감독하고 있지 않고 있다”며 “감사원이 이 같은 사실을 밝혀내야 할 것”고 고발배경을 밝혔다.
물질안전보건자료란?
물질안전보건자료(Material Safety Data Sheet)란 화학물질의 이름·물리화학적 성질·유해위험성·폭발 및 화재시 방재요령·환경에 미치는 영향 등을 기록한 서류(Sheet)다. 쉽게 말해 화학물질에 대한 취급 설명서라고 할 수 있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의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자료다.
우리나라는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과 함께 정부 주도로 ‘물질안전보건자료의 작성 및 비치 등에 관린 기준’을 제정해 5만533개의 물질을 대상을 선정하고, 이를 취급하는 사업장은 작업장 내에 고시토록 하고 있다.
또한 노동자가 취급물질에 대한 유해 및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실시하고 정보를 공유할 것을 사용주에게 의무화하고 있다. 적용대상은 주로 폭발성·산화성·독성·유해성·부식성,·발암성을 갖고 있는 물질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