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간의 시골생활 적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장보기’에 대해 말해볼까 한다.

우선 이전에 의왕시에 살 당시 나의 장보기는 다음과 같았다.

매주 한 번 정도 생활협동조합에 가서 유기농 먹을거리와 과일을 샀다. (도보10분)

또 한 달에 두세 번은 대형마트에 가서 유제품류와 생활용품, 잡화를 구입했다. (자동차로 10분). 급하게 필요한 것은 집 앞 슈퍼에서 사 올 수 있었다. (도보 30초)

의류는 필요할 때마다 30여개의 상설할인매장이 모여 있는 아울렛 거리에 가서 구입했다. (도보10분)

휴일 아침에는 동네 분식집에서 김밥과 오므라이스 등을 사다 먹었고 (도보5분), 통닭과 피자,중국 음식 등의 배달음식도 쉽게 이용했다. 

출퇴근하면서 출출할 때엔 전철역 근처의 포장마차에서 토스트와 오뎅, 꼬치 등을 자주 사 먹었다.    

시골로 이사 온 동네는 읍내로부터 차로 20분 떨어진 시골 마을이다.

이 마을에는 슈퍼가 없다. 당연히 정육점도, 쌀집도, 김밥집도 없다.

여기서의 장보기는 다음과 같다.

기본적인 먹거리와 생필품, 의류, 잡화 등은 읍내의 5일장을 이용한다. (전철로 30분)

생협은 양수리에 있는데 전철역에서 멀고, 사람이 보행할 수 있는 길이 없고 도로 갓길로 걸어야 해서 위험하다. 자동차로도 25분 정도 걸리므로 점점 이용을 하지 않게 되었다. 유기농산물을 먹고자 하는 개인 의지는 강하지만 실현이 힘들다.

슈퍼가 없으므로 간식거리는 읍내에서 한꺼번에 사서 부엌에 쟁여놓아야 한다.

아울러 빵집도 없으므로 읍내에 다녀올 때마다 사온다. 그때그때 먹고 싶을 때마다 읍내에 갈 수 없으므로 장보는 날은 당장은 별로 먹고 싶은 생각이 없더라도 사놓아야 나중에 먹을 수 있다.

배달음식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졌다. 자장면집이 한군데 있으나 너무 맛이 없어 도저히 먹을 수 없는데 그 외에는 배달음식점이 없다. 동네에 배달음식점이 없으니 오랜 기간 자장면 집이 독점하면서 음식을 엉망으로 만드는 것 같다. 치킨집도 없어 읍내에서 통닭을 시켜먹으려면 기본 3마리를 주문해야 배달해 준다고 한다.

약국도 읍내까지 가야 하므로 기본적인 약품, 즉 소화제, 해열제, 감기약, 소독약 등은 집에 구비해 두어야 한다. 

이전과 달라진 점을 정리해 보면,

가까운 곳에서 쉽게 장보기가 어려우므로 읍내 나갈 때 일주일 혹은 열흘치의 반찬거리와 간식거리를 사서 한보따리씩 마련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부엌은 요리의 공간 외에 식료품의 저장 공간의 의미가 커졌다. 싱크대의 곳곳에 사서 채워둬야 한다. 다 먹어서 선반이 비기 시작하면 마음이 조급해지는 현상이 생겼다.

배달음식과 분식집 등이 없기 때문에 라면과 빵이 중요한 먹거리가 되었다. 이제 주말의 점심 한 끼는 외식 대신 라면을 끓여 먹는 것으로 마음을 달래고 있다.

장 보는 비용은 좀 더 많이 들고 있다. 예로 아이스크림을 들 수 있는데 도시에서는 슈퍼에서 아이스크림을 50%할인가에 판매하지만, 동네의 구멍가게에서는 할인 없이 제값을 받고 있다. 싸게 사려면 읍내까지 나가야 되는데 집에 오는 사이에 녹아버리니 어쩔 수 없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살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는 뭘 사려면 멀리 가서, 제값주고, 다량으로 사와야 한다. 다량으로 사와야 하니 미처 못다 먹고 버리는 식재료도 많다. 그렇다고 조금만 사오면 마음이 불안하다. 작년 노건연 송년회에서 선물교환 할 때 장보는 구루마를 선물로 받았는데 이곳 양평에서 아주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좋은 점도 있다. 사방이 밭이라서 푸성귀를 쉽게 구할 수 있는 점이다. 특히 전철역 앞은 동네 할머니들이 나물거리와 엽채소류를 들고 나와서 보자기 깔고 팔기 때문에 쉽게 구할 수 있고, 그도 싫으면 앞집 뒷집 할머니들에게 소쿠리 들고 가면 바로 밭에서 뽑아주므로 생생한 직거래가 된다. 그러나 품목이 한정적이어서 상추, 깻잎, 고추만 구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결국 장보러 읍내에 또 나가야 한다.

오늘은 장날이라 옆집 민준이네 아주머니와 같이 읍내에 갔다.

둘이 전철을 기다려 타고 가는데 민준이네 아주머니는 양평에서 나고 살았기 때문에 장에 나가는 모든 사람들과 인사하느라 바쁘다.

오늘 소비만 하는 나와 생산을 주로 하는 아주머니는 장에 가는 목적이 다르다. 내가 살 품목은 명태 코다리와 대파, 양파, 김자반, 왜간장, 겨울용 덧버선 등이고 겨울내복의 가격이 어떤지 살짝 알아볼 예정이다. 반면 농사를  많이 짓는 민준이네 아주머니는 특별히 살 것은 없고 약콩과 백태의 시세를 알아보는 것이 주 목적이다. 지난주에 아주머니네 집은 가을걷이로 콩을 몇 말 털었는데 양수리의 도매상에 내다팔까 어쩔까 고민 중이라고 하니 콩 시세를 미리 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시장에 도착한 우리는 이것저것을 사고 시세도 알아보았다. 민준이네 아주머니는 시장 장사하는 아주머니들과도 친구가 많아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느라 바쁘다. “올해는 대파가 풍년이라 파 값이 형편없어”, “메주콩은 중국산이 너무 많이 들어왔어”, “내년에는 고추농사 얼마나 지을거야?” 등등의 대화를 나누시는데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서로 내년에 밭에 뭘 심을까 고심하는 눈치들이시다.

얼추 점심때가 되어 장날에만 나오는 국수좌판 집으로 갔다. 여기는 국수와 보리밥을 2,500원에 파는데 모르는 사람은 싸다고 좋아하지만, 처음에 2,000원에 먹다가 500원이 오르니 무척 비싸다는 생각을 먹을 때마다 하게 된다. 국수 한 그릇씩을 말아 먹는데 옆에서는 SBS에서 양평장 탐방을 나와서 국수 먹는 사람들을 찍으면서 리포터가 열심히 떠들어댄다. 국수를 먹은 후 우리는 핫도그 할머니한테 가서 후식으로 핫도그를 먹었다. 서울 등의 핫도그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튀겨온 것이라 맛이 쓰고 딱딱한데 양평에는 아직까지 그 자리에서 반죽해서 튀겨주는 옛날 핫도그들이 많다. 금방튀긴 핫도그에 설탕과 케첩을 뿌려 먹으니 배가 부르다.

점심도 먹었으니 이제 돌아가야 할 시간. 양평역에 들어서니 같이 장에 나왔던 동네 사람들을 다시 만난다. 30분에 한대씩 있는 전철이라, 나오는 시간도 들어가는 시간도 얼추 비슷하기 때문이다. 민준네 아주머니는 동네 사람들과 내년 농사계획을 마저 이야기하느라 바쁘고 나는 다른 사람들은 장에 뭘 사오는지 유심히 들여다보며 ‘나도 다음 장날에는 저걸 사봐야지’ 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이제 겨울이다. 또다시 혹독한 계절이다. 장보기가 가을에는 재미도 있고 날씨도 좋아서 다닐 만하지만 일 년에 그런 날은 한 두 달이 고작이다.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워서 장 보는 게 고통이다. 눈 오면 또 고생이고 비가 오면 장은 아예 서지를 않는다. 어렸을 때 엄마가 이사를 앞두고 새집을 얻을 때 시장이 얼마나 가까운지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이유를 온몸으로 절감하며 사는 중이다. 마트 대신 재래시장과 소규모 슈퍼를 이용하는 것을 지향하며 노력하던 나는 양평으로 이사 와서 대형 마트의 편리함을 눈물겹게 기억하게 되었다. 사무실에서 퇴근하면서 방배동에서 채소 등의 반찬거리를 사서 멀리까지 전철 탈 때 마다 ‘이게 뭔 짓이지?’ 했지만, 사무실을 휴직한 지금은 그마저도 그리울 뿐이다. 나도 생협에서 인터넷으로 장을 보고 물건을 집 앞 현관으로 배달 받고 싶다. 얼마나 좋을까. 얼마나 편리하고 행복할까. 편리한 소비를 향해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의 흐름에서 비껴나 있으니, 상당히 느리고 또한 불편하여 마음속으로 꾀가 나고 있는 중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