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 폭발 사태, 기업살인법만 있었어도…
‘위험사회’를 집필한 울리히 벡이 한국에 방문해서 던진 말이다. 그는 사람들이 위험에 너무 오래 노출되어 있으면 위험의 정도를 잘 느끼지 못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결국 느끼지 못했고 적나라하게 노출된 채로 살고 있었다. 이번 구미의 휴브글로벌 폭발사고를 바라보며 불안함에 떨어야 할 미래의 위험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고민해본다.
어느 부처의 잘못을 따져야 하는 걸까
사고를 본질로 돌려보면 발생 장소는 석유화학공장이었고, 극도로 위험한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기업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했다. 5명의 노동자가 죽고, 인근 주민들, 식물, 동물 그리고 공기와 토지, 식수마저 막대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이 회사는 불화수소가스를 사용하므로 산업안전보건법 제49조의 2에 따라 공정안전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있고 관할은 고용노동부이다. 공정안전보고서는 ‘그 설비로부터의 위험물질 누출, 화재, 폭발 등으로 인하여 사업장 내의 근로자에게 즉시 피해를 주거나 사업장 인근 지역에 피해를 줄 수 있는 사고로서 중대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작성하는 보고서’로 그 내용이 중대산업사고를 예방하기 위하여 적합하다고 통보받기 전에는 관련 설비를 가동하여서는 안된다.
이 절차를 당연히 거쳤야 했던 휴브글로벌, 그러나 사업 시작 당시 4인이었거나 4인으로 신고했거나 어떠한 이유로 작성의무가 없었다. 5인이상의 사업만 신고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인이상이 되는 순간 회사는 공정안전보고서를 작성해서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하지만 법 위반과는 별개로 그걸 관리감독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애당초 유해위험설비 안전 기준을 노동자 수로 나눈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는지도 모른다. 이 법은 지금의 상황을 명확하게 가리키고 있지만 말이다.
그 밖에도 유해화학물질 관리법에 의해 환경부가, 독성가스 사용은 고압가스 관리법에 의해 자치단체가, 위험물은 위험물 안전 관리법에 의해 소방서가 관할한다. 대체 뭐가 이리 복잡할까? 여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상대응체계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옳다. 그러나 또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 사고가 나기 전 발생했을 최소 수십 번의 위험한 순간이다. 그렇게 넘기다가 극단적 상황을 맞이한 것이다. 그 순간들의 관리는 어떻게 된 것일까?
시간을 앞으로 돌려보자. 2012년 8월 27일부터 9월 7일, 대구지방노동청 구미지청은 16개 회사를 대상으로 산재예방조치 준수여부를 위한 집중단속을 실시했다. 그 결과 한 곳을 제외한 15개 회사에서 50건의 위반사항을 적발했고 이는 구미지청의 성과였다. 불시단속을 꾸준히 하겠다는 자랑스런 발표 이면에는 그동안의 단속은 대체 어땠나 하는 의문을 남긴다. 또 한가지, 왜 16개의 사업장만 점검했을까?
최근 연이어 발생하던 중대재해에 이번 구미 휴브글로벌 폭발사고가 정점을 찍기 바로 직전 한 방송사 뉴스에서 산재왕국 언제까지 이어질 것인가에 대한 특집기사를 다루었는데, 문제점 중 하나로 전국의 산재담당 공무원이 300명으로 150만곳의 사업장을 다 돌려면 1인당 15년이 걸린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 넓디 넓은 구미 화학섬유단지 회사 중 극히 일부만을 점검해야 했던 이유이다. 갔더라도 위험을 감지하기 어려웠을 가능성이 크다.
▲ KBS 뉴스 ‘산재사망 OECD 1위… 실태 원인은?’ 영상 캡쳐 계속되는 중대 산재사망사고를 계기로 KBS 뉴스에서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으로 영국에서 시행중인 ‘기업살인법’을 조명했다. | |
ⓒ 박혜영 |
기업이 스스로 예방해야 한다
휴브글로벌 폭발 사고가 발생하자 한 기자가 노동건강연대로 전화를 걸어왔다. 그는 위험한 화학물질을 사용하는 회사의 안전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으나, 그 규모를 대체 누가 알고 있을까요?라는 답변 밖에 할 수 없었다. 모든 곳이 다 위험하지 않겠는가? 예방이 안 되는데. 너무나 많은 관련 법령, 복잡하기만 한 각종 시행규칙과 규정들에, 얽히고 설킨 관련부처와 떠넘겨지는 책임 속에 안전은 어느새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공중부양을 하고 있을 뿐이다. 이게 현실이다.
이제는 ‘산재공화국’이라는 타이틀도 무감각해지고, 여전히 일터에서 일하다가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 그보다 더 큰 위험이 닥친 지금에 와서 보니 우리는 스스로를 보호할 장비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 다만 책임 떠넘기기를 하는 정부를 원망하며 피해 주민들이 무사하기를 빌 뿐이다. 누군가가 솜방망이 처벌이나 받겠지 하는 자조 섞인 한숨과 함께. 불과 얼마 전까지 ‘사람이 일하다가 왜 죽나요?’라는 질문을 멋지게 해보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는데, 지금은 전국의 무수한 위험한 화학물질 취급 회사 옆에만 살아도 죽을 판이니 이게 무슨 상황인가?
한 숨 돌리고, 세세한 부분보다 큰 틀에서 바라보자.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함이 반복되어 위험으로 발전한다고 했던 울리히 벡의 말을 생각해본다. 그러면 기업들이 스스로를 통제하게 하면 어떨까?
노동건강연대는 10년 전 한국사회에 ‘기업살인법’을 소개하고 현재까지 꾸준히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기업의 안전관리가 미비해 산재사망이 발생하면 그 기업의 사업주를 구속 처벌하고 징벌적 손해배상금을 부과하면 이를 피하기 위해 되도록 완벽한 안전조치를 한다. 이는 가까이는 그 회사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를 보호하고 기업의 이미지를 제고하며 더 나아가 사회의 안전을 도모하게 된다. 따라서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 요소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주를 범죄자로 규정하여 구속 처벌하는 법이 필요하다.
이미 2007년부터 이 법을 시행하고 있는 영국의 법사위원회가 96년 정부에 권고한 내용 중 일부를 보자.
공공의 안녕에 영향을 끼치는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이에 대한 책임을 묻기 위하여 기업에게 형법상의 과실치사죄를 적용할 필요가 대두되었다. 그런데 이 경우, 단지 일개 노동자 개인(안전관리자, 현장소장 등)에게만 모든 책임을 물어 처벌하고, 누가 보아도 책임을 면하기 힘들어 보이는 사업주는 처벌하지 않는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대중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었다. 매년 너무 많은 수의 노동자들이 공장과 건설 사업장의 사고로 죽어가고 있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예방 가능한 것이었다.
이러한 공감대 속에서 도입된 기업살인법은 첫 사건에서 한 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기업에 약 7억의 벌금을 부과한 바 있다(더 자세한 내용은 지난 기사 참조 – ‘사람죽으면 벌금내지 뭐…’ 그건 아니죠 ). 반면 한국은 40명이 죽어도 벌금 2천만원만 내면 되는 나라이다. 사실 이를 단속하는 법 자체가 일반적으로 기업의 대표자에게 책임을 묻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기도 하다.
강력하고 통일된 제재수단이 없는 현 시점에서 이 법을 도입하자는 취지는 처벌이 아닌 예방이다. 산재 예방을 잘하는 기업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보다(현행), 법을 어긴 사업주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이 산재예방에 더욱 효과적이라는 연구결과를 우리는 새겨 볼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책임 부처가 어디인지 다투고, 사고가 난 뒤 뒷수습에만 급급할 수는 없지 않은가.
마지막으로 울리히 벡의 또하나의 지적.
이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 가지 위험들은 주로 부정부패, 정부의 실패 등 ‘조직적 무책임’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래서 대재앙이 일어나면 책임질 주체가 없고 국민들은 더 불안하다.
이 지적에 어긋남이 없는 현실이라면, 근본적 위험요소를 지닌 자가 직접 예방하게 하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이제 우리도 기업에게 채찍을 들자.
> 기사 원문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7053
> 기업살인법 더 알아보기
?> KBS뉴스 산업재해& 기업살인법 관련 기사
http://laborhealth.or.kr/?document_srl=31712&mid=resource
> 일하다 죽으면 어떻게 하나? 스웨덴 사람에게 묻자… (프레시안 기사)
노동건강연대의 릴레이 강연회를 통해서 본 한국사회의 산업재해 문제
http://laborhealth.or.kr/29891
> 휴브글로벌의 회사 규모 등
현재, 구미공장은 제2공장일 뿐이며, 음성에 제1공장이 있고, 생산물은 전국 각지
5개 물류 창고에 적치될 만큼 규모가 매우 큰 상황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