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풍경


할머니와 열사병



 노동건강연대 회원



올여름은 유난히 무더웠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날씨가 더우면 일하는 곳도 더워진다. 더운 날씨에 일을 하거나, 더운 곳에서 일을 하려면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번 호에서는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것에 대하여 다루어 보려고 한다.


십 년도 더 지난 일이지만 농촌 지역에서 근무를 한 적이 있다. 그 날은 아주 더웠고 진료실 바깥은 뙤약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날씨가 더우니 환자들도 거의 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한 할머니가 갑자기 조용한 진료실로 들어오셨다. 할머니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이상하다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할머니는 마치 힘이 모두 빠져나가버린 사람처럼 보였다.


“나 지금 몸이 너무 이상한데 좀 봐주시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자신도 잘 모르겠지만 몸이 너무 이상해져서 오셨다는 것이었다. 특별한 병도 없고 아픈 적도 없다고 하셨다. 그런데 오늘은 너무 몸이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냥 계속 ‘이상하다’다고만 표현을 하셨기 때문에 무슨 문제인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체온과 혈압을 재던 간호사가 놀란 목소리로 “체온이 41도나 됩니다.”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병원에서는 어떤 병으로 오건 우선 체온과 혈압을 먼저 재보게 되어있는데 그 순간 바로 문제가 발견된 것이었다.


“할머니, 어디서 무었을 하셨습니까?”

“그냥 밭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할머니는 평소에 하시던 밭일을 했을 뿐이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 바깥은 불볕더위가 아닌가? 순간적으로 이건 몸의 체온이 너무 올라가서 생기는 ‘열사병’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사병이 발생하면 몸의 체온을 빨리 낮추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할머니, 뙤약볕 아래에서 일하다가 체온이 너무 올라가서 생긴 현상입니다. 빨리 체온을 낮추어야 하니 우선 옷을 벗고 편안하게 누우세요.”


옷을 벗은 할머니에게 선풍기를 가져다가 틀어드렸다. 간호사에게는 수건에 물을 적셔서 온 몸을 닦아드리라고 했다. 바로 물의 증발을 이용하는 치료법!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체온이 급격하게 올라갔을 때에는 이것이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다. 의사들이 보는 책에는 열사병이 발생할 경우 무조건 그늘에서 쉬게 하며 섭씨 39도까지 체온을 빨리 낮추라고 되어있다. 샤워기로 시원한 물을 틀어주거나 욕조에 들어가게 하는 방법도 있지만 이런 방법을 쓰려면 정신이 멀쩡한 사람이어야 한다. 열사병의 병세가 진행하면 정신을 잃을 수도 있는데, 잘못하면 물이 폐로 들어가거나 욕조에서 물에 빠져 생명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갑작스런 찬물 목욕으로 인하여 저혈압이나 온몸 떨림이 발생할 수도 있어서 주의해야 한다. 열사병에는 해열제와 같이 열을 내려주는 약을 쓰는 것도 좋지 않다고 되어있다. 역시 가장 좋은 방법은 온 몸에 물을 바르면서 선풍기를 쐬는 것이다! 할머니의 체온은 우리가 쓴 방법만으로도 다행히 섭씨 39도로 내려가며 회복이 되기 시작하였다. 작은 진료소에서 근무하였던 시절이었고 응급조치 이외에는 더 이상 특별한 방법이 없었다. 나는 주차장으로 나가 햇볕 아래에서 시뻘겋게 달아올라 있던 내 고물 자가용의 시동을 켠 뒤 에어컨을 완전 가동하였다.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5분 거리에 있는 큰 병원 응급실로 옮겨다 드렸다.


만약 할머니가 아무도 없는 밭에서 일하다가 쓰러지셨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할머니는 생명을 잃으셨을 것이다. 밭일을 하다가 쓰러져서 돌아가시는 농부들의 이야기는 해마다 여름이 되면 항상 뉴스에 나오는 사건들이 아니던가. 열사병을 앓고 나면 온 몸(신경, 심장, 폐, 신장, 혈액)에 여러 가지 합병증이 발생하고 심한 장애가 남을 수도 있다. 나는 할머니에게 이런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 진료소로 돌아왔다.


세상에는 농촌에서 만났던 그 할머니처럼 더운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공장, 농촌, 군대, 학교 등. 에어컨이 설치되어 있는 곳이라면 좀 덜 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많으니 문제이다. 날씨와는 상관없이 일 년 내내 더운 곳도 있다. 예를 들면 유리를 녹이는 곳이나, 용광로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다. 고온의 공기가 발생하는 작업 공정 때문에 공장에 들어서면 후끈거리는 곳들도 많다. 만약 이와 같은 작업장에 몸에 해로운 물질들이 많다면 작업은 더욱 힘들어진다. 방독면, 귀마개, 보안경과 같은 보호 장구들을 모두 착용하고 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온 몸에 흐르는 땀과 먼지, 유독 가스, 그리고 하루 종일 착용해야 하는 보호 장비들은 작업자를 더욱 힘들게 한다.


더운 곳에서 일할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과학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작업을 미리 계획하여야 한다. 열사병 예방지수(WBGT)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은 작업장의 온도, 기류(바람), 습도, 복사열(물체표면온도)을 가지고 계산해 내는 수치이다. 어느 정도로 심한 노동을 해야 하는지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앉아서 손을 사용하는 조립 작업과 곡괭이질 혹은 삽질은 그 세기가 매우 다르다. 열사병예방지수와 작업의 세기를 알면 그에 따라 일을 할 수 있는 시간과 쉬어야 하는 시간이 정해진다. 어떤 경우에는 45분간 일을 한 뒤 15분간 쉬어야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15분간만 일을 하고 45분간 쉬어야만 생명에 지장이 없다.


이전에 더운 곳에서 일해본 적이 없는 사람은 작업 시작 전에 2주 정도 서서히 몸을 적응시켜야 한다. 이를 ‘고온순화’라고 하는데 더운 작업장에서는 아주 중요한 안전수칙이다. 작업자가 주말에 하루 이틀 간 쉬고 출근하는 경우에는 상관이 없지만 만약  3일 이상의 휴가를 다녀왔다면 다시 고온 순화를 거쳐야 일을 할 수 있다.


고온 작업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우선 작업 환경을 개선하여야 한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잘 설계되고 유지되는 냉방시설이 있어야 한다. 샤워시설도 필요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모든 작업장이 그러한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작업 환경에 대한 개선뿐 아니라 적절한 수분과 염분의 섭취, 충분한 휴식과 같은 조치도 필요하다.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이 염분 없이 물만 계속 마시면 ‘열경련’이라고 하는 근육의 심한 경련이 올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하여야 한다. 노인, 살찐 사람, 술 마시는 사람, 신체에 병이 있는 사람들은 열사병이 쉽게 올 수 있으므로 더욱 주의하여야 한다.


열사병은 제대로 치료를 하지 않으면 생명을 잃을 수 있는 병이다. 치료를 하지 않으면 100% 사망하며, 체온이 섭씨 43도 이상일 때는 80%가 사망한다. 체온이 섭씨 43도 이하일 때는 40%가 사망한다. 따라서 여름에 야외에서 일하는 경우 혹은 사시사철 더운 곳에서 일하는 경우에는 많은 주의를 하여야 하겠다.


요즘처럼 뙤약볕이 내리쬐는 더운 날씨가 되면 밭일을 하다가 힘들어서 들어오신 할머니가 자꾸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