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 이라니 기분 나쁜 단어다. 거기다 ‘기업’을 갖다 붙이다니 생경하고도 불쾌한 어감을 가진 조어 아닌가. 한 해 동안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가장 많은 기업을 찾아 ‘상장’을 주고, 기업 이미지에 누가 될 만한 퍼포먼스를 연구하자니, 시상하는 우리도 혼란을 겪을 때가 많았다.
사망한 노동자 수를 헤아리는 작업은 정부 통계를 입수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산재사망으로 집계된 자료를 바탕으로 기업별 사망건수를 더해간다. 1회 때 상을 받은 GS건설 앞에 상장을 들고 찾아갈 때는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들이 ‘기업에서 명예훼손으로 걸면 어떡할 거냐’고 걱정하기도 하였다. 청계천으로 시상식 장소를 옮긴 후에는, 당시 최고 한류스타가 광고모델을 하는 아파트 브랜드가 살인기업 1위로 상을 받게 되어 그 모델을 인쇄해서 들고 있으니 중국 관광객들이 연신 카메라를 들이댄 적도 있다. 중국 관광객들은 ‘역시 스타군’ 하면서 반가워하는 눈치였다.
기업별 사망자수를 더하는 문제는 고려할 것이 많은 덧셈문제라 답을 내기가 쉽지 않다. 건설업에서일용노동자들의 사망, 레미콘이나 포클레인 사고처럼 지입차주로 불리거나 개인사업자로 분류된 노동자들의 사고를 어떻게 집계할 것인가 논란이 인다. 최근에는 제조업의 사망사고 통계조차 다단계 하청구조를 어떻게 반영할 것인지 고민이 늘었다. 지난해 시상식을 하고 난 후에는 ‘왜 우리 회사가 일등이냐, 집계 방식에 문제가 있다“며 기업 차원에서 항의를 해오기도 하였다.
2년 전 정부가 추진한 4대강 공사현장에서 사망한 노동자수를 헤아릴 때는 한 시민단체와 다른 결과가 나와 우왕좌왕하기도 하였다. 결국 해결하였지만, 이런 혼란은 노동자 사망에 대한 원청기업, 발주기업의 책임을 명확히 하지 않은 회색지대, 즉 무책임한 기업자유지대가 매우 폭넓다는 것을 말해준다.
죽어간 노동자의 메시지는 왜 수신되지 않나
노동자의 산재를 이야기할 때 우리는 OECD 1위니, 연간 2천여 명이 넘는 노동자가 죽는다느니, 전쟁터라느니, 익숙한 수사를 동원하지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자본과 노동, 기업과 노동자. 사회를 구성하는 두 세력 가운데 한 쪽은 소수지만 절대 권력을 쥐고 있다. 절대권력 가까이 가는 길이 생존의 길인 다수의 사회구성원에게 2천명의 죽음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줄 수 있을까.
사망자 2천이라는 통계 뒤에 1백만 내지 3백만 명의 산재로 다친 노동자들이나 직업병 걸려 아픈 노동자가 있다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면, 기업이라는 절대 권력에 대한 회의와 저항이 조금은 힘을 받을지도 모를 일이다. 기업과 싸우는 이가 우리 집에 있거나 옆집에 있거나 친척 중에 있을 테니까.
그런데 이런 일이 벌어질까 노심초사하는 정부는 산재 치료를 받는 사람을 해마다 딱 9만 명씩만 만들어낸다. 이마저도 더 줄이겠다고 5개년계획인지를 세워놓았다고 한다. 사실 계획 같은 거 없어도 산재보험 세부 운영만 살짝 바꾸면 보험 받기가 어려워져서 산재율도 줄여나갈 수 있는데 모르고 계셨나. 산재를 막을 수 있는 기업 시스템을 만들고 정부가 감독, 감시하는 체제를 강화하겠다고 하면서 기본 원칙은 기업의 ‘자율’이라고 명토 박아 놓은 게 5개년 계획이다. 노동부는 정부개입과 기업자율을 동시에 충족하는 요술방망이라도 숨겨놓으신 것인지.
산재인정기준을 기술적으로 세분화하고 복잡하게 만들어서 노동자들이 산재보험 신청을 엄두도 낼 수 없게 만들어놓으면 산재통계는 줄어든다. 노동자가 회사 관리자, 사장과 싸우면서 절차를 거치도록 산재보험을 설계해놓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보험으로 보상받은 것만 산재통계로 집계한다.
기업 CEO 고발에 담은 뜻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자가 산재로 죽은 기업에 대하여 법이 어디까지 책임을 물어줄 수 있을까 알아보기로 하였다. 기업 스스로, 감독책임이 있는 정부 스스로 아무 것도 안 하려고 하니까 법은? 법은 어떠한가 묻기로 하였다.
노동자의 죽음에 대하여 우리가 쓴 최초의 고발장은 이마트를 수신인으로 하였다. 2011년 여름, 이마트 매장 안에 냉동 창고를 수리하던 4명의 노동자가 질식사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망자 가운데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알바로 왔던 대학생이 있었다. 젊은 학생의 죽음에 대한 애도여론이 높았다. 우리는 이마트의 책임을 묻기로 하였다.
이마트에서 사망사고에 났으면 사람들은 이마트 직원이 사망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법으로 발주업체나 원청에 대하여 책임을 묻기 어렵게 되어있다.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법은, 원청기업은 일을 맡긴 하청업체에 대하여 지도, 조언, 협조 같은 ‘우아한’ 의무만 있을 뿐, 정작 사고가 났을 때 책임유무를 가리기는 어렵게 만들어놓았다. 고용관계를 맺지 않은 이마트는 책임이 없다고 나올 것이고, 사고 조사가 끝날 때쯤 4명 노동자의 죽음은 하청업체의 잘못으로 밝혀질 것이었다. 하청의 원청인 냉동 창고를 관리하는 기업조차 큰 잘못이 없다고 할 것이며, 그 원청의 발주자인 이마트는 아예 사고와 무슨 관계가 있겠냐고 할 것이기에, 하청업체의 사장도 사망자 가운데 한명인 상황에서, 사고에 대한 책임을 하청이 덮어쓰는 게 당연한 수순으로 보였다. 그러나 외주, 하청, 도급 같은 용어로 주어지는 많은 일들은 예전에는 대기업이 직접 고용한 노동자가 하던 일들이다. 우리의 고발은 ‘이익을 누리면 책임도 지라’ 는 외침이기도 하다.
고발의 결과는, 이마트 지점장에 대한 약식벌금 100만원. 이마저도 사회여론을 감안하여 노동부가 조사를 세게 하였기에 각종 법위반사항을 찾아낸 결과라고 설명까지 곁들였다. 그런데 최근 반전이 일어났다. 당시 노동부가 이마트의 사고 대응을 도와주고 소고기를 얻어먹었다는 사실이 이마트 노동조합 설립과정에서 밝혀졌다. 9시 뉴스에도 나왔다.
노동건강연대는 지난해 다시 LG화학 대표이사를 고발하였다. 청주에 있는 공장에서 일어난 폭발사고로 처음 사망자는 1명이었고 부상자가 13명이었지만, 결국 최종 사망자는 8명이 되었다. 사망자가 늘어날 때마다 언론이 더 크게 다루는 것이 합당해 보였지만 기사는 점점 줄어들었다. 8월말에서 9월에 이르는 한 달여 기간 LG화학은 사고에 대하여 거짓말을 하고, 언론의 출입을 막고, 사고를 덮기 위해 시간을 벌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그리고 이 시도는 성공하였다.
LG화학 대표이사에 대해서 검찰은 무혐의처분을 하였다. 검찰은 ‘서울에 주재하는 회사의 대표이사로서 사고발생지인 청주공장의 경영과 관련하여 실질적인 권한과 책임을 청주공장 임원에게 위임하여 공장 사업에 관여한 바가 없기에’ 대표이사의 책임이 없다고 한다. 서울에 책상 두고 앉아서 일하고 있다고 해서 그 생산시설인 공장의 대형사고에 대하여 책임이 없다니, 세계15위, 국내1위 화학기업의 최고경영자로서 참 쉽게 일하시는구나 싶다.
그런데 우리가 고발한 대표이사는 보고·회의·퇴근 문화를 개선하여 불필요한 업무를 줄이고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도록 큰 힘을 쏟은 결과 ‘한국의 경영대상’ 종합대상을 5년 연속수상하고, 일하기 좋은 기업 제조부문 5년 연속 대상을 받았다고 한다. 8명이 사망한 생산현장의 인명사고와 경영이 이렇게 분리되어 있다니! 대기업에서 노동자사망이 이어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기업 CEO가 ‘보고·회의·퇴근 문화 개선’에 힘쓰는 동안 생산현장의 노동자는 죽을지도 모르는 현장으로 일하러 간다. LG화학 사고에서 또 하나 특이한 점은 사고공장의 공장장에 대하여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형량이 가벼운 형법상의 업무상과실치사로 불구속 기소하였다는 것이다. 중한 인명사고에 대하여 이렇게 관대한 검찰이니, 노동자사망에 대한 기업의 법적책임을 다투려 해도 출발부터 난조다.
노동건강연대는 현재 성수역에서 스크린도어 공사를 하던 하청노동자가 1명이 사망하고 얼마 후 다시 1명 사망한 사고에 대하여 서울메트로 사장을 고발하였다. 이는 하청노동자에 대한 작업지시를 서울메트로에서 내렸기에 원청인 서울메트로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점을 짚고자 했다. 우리는 또한 잇따른 하청노동자의 사망으로 배짓는 조선소가 아닌 사람 잡는 조선소가 된 대우조선해양 사장도 고발하였다. 대우조선해양의 하청노동자 사망에 대한 고발은 특별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우리는 처음으로 단독고발이 아닌 일하는 노동자가 고발인으로 참여하는 고발을 하였고, 비정규직노동운동을 조직하고 지원하는 단체의 대표자들과 함께 고발장을 작성하였다. 노동운동에서 고발장은 흔한 전술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22명의 사회단체 대표자가 하청노동자의 사망에 책임을 지라고 자신을 고발했다는 것에 대하여, 대우조선 사장의 기분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다.
대기업 CEO를 고발해 보니 작은 단체가 낸 고발장이라도 기업에서는 비중 있게 다루며, 여기 저기 전화를 돌려 직간접적인 압박을 넣기도 한다는 것을 알았다. 기업이 누리는 절대 권력은 의외로 약한 고리를 갖고 있다. 기업은 고발당했다고 언론에 나오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기업의 이름이 부정적 이미지로, 정치적 쟁점으로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 한다.
영국, 호주, 캐나다 같은 자본주의 ‘선진국’은 기업살인법(Corporate Killing Law)이 있다. 노동자의 안전을 위해 필요한 필수적 요소를 이행하지 않아 노동자를 죽게 만든 기업주라면 범죄자로 규정하는 것이 사회정의에 부합하지 않겠는가. 공공의 안녕을 위협하고, 막을 수 있는 재난을 방치, 방조하는 기업을 처벌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토론을 시작하자. 우리가 기업을 고발하면서 말하고 싶은 것은, 노동자의 생명을 경시하는 기업은 노동자의 생존권, 노동자의 인권도 우습게 안다는 것이다. 우리가 침묵하고 있으면 기업은, 나와 당신을 그저 저들이 만든 물건을 묵묵히 사주는 ‘고객님’ 으로만 길들이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