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때문에 노동자가 죽는 나라
서울지하철 차장 운전 중 용변보다 추락사
매일노동뉴스 김미영 기자
전동차를 운전하던 서울지하철 차장이 기관실에서 급한 용변을 보다 선로로 추락해 뒤따라오는 열차에 치여 사망했다.
10일 서울지하철노조에 따르면 지난 9일 오후2시5분 차장 김아무개(39)씨가 전동차의 기관실 창을 열어 용변을 보다 선로로 떨어져 열차에 치여 사망한 것으로 파악돼 경찰이 조사에 나섰다. 조사 중인 동대문경찰서는 뒤따라오던 열차를 운전했던 기관사가 선로에 기절한 채 누워있는 김씨를 보고 급제동 했지만 전동차를 세우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확인됐다고 전했다.
서울지하철노조 허철행 산업안전부장은 “김씨가 이날 심한 설사병에 앓고 있는 상태에서 전동차를 운전했고, 기관실에 용변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시신의 바지가 내려져 있는 점 등에 미루어 급한 생리현상을 해결하려다 그만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허철행 산업안전부장은 “전동차 운전대를 잡으면 4시간30분 동안 화장실을 갈 수 없는 근무체계가 이번 사고를 불렀다”면서 “서울메트로 사측에 승강장 화장실 설치를 수년 동안 요구했지만 특별한 이유도 없이 이를 거부해왔다”고 말했다. 서울지하철노조는 기관사 화장실 이용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김씨의 장례를 치루지 않겠다고 밝혀 당분간 진통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편, 서울메트로 홍보팀 조동수 보도차장은 “기관실이나 승강장에 화장실을 설치할 경우 기관사가 용변 때문에 운행시간에 차질을 주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면서 “대신 청량리역 등 종착점 4곳에 기관사가 이용할 수 있는 화장실을 만들어놓았다”고 말했다.
화장실 때문에 노동자가 죽는 나라
지난 9일 서울지하철 기관사가 운명을 달리했다. 경찰의 정확한 조사결과가 나와 봐야겠지만 지금까지 확인된 사실에 따르면 사망원인은 ‘용변’ 때문이다. 서울지하철노조에 따르면 설사병이 난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았던 이 기관사는 너무 급한 나머지 달리는 기관실의 문을 열고 똥을 누다 사망했다고 한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꼭 필요한 ‘화장실’이 숨진 기관사에게는 너무나 멀었던 것이 그만 목숨까지 잃게 한 것이다.
사실 지하철 기관사들이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조차 해결하지 못해 애를 태운 것은 하루이틀 문제가 아니다. 기관실에 신문지를 깔고 급한 용무를 해결하는 그들의 처지는 지난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소까지 됐지만 사용자는 여전히 이를 외면하고 있다. 서울메트로 사측이 내놓은 방안은 고작 ‘운전 전날 과식과 과음을 삼가하라’는 내용의 사원교육이 전부이다. 이번 사망사고에도 서울메트로의 대응은 한심한 수준이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만약 기관사가 화장실 때문에 열차운행을 지체한다면 바쁜 승객들에게 큰 불편을 줄 수 있다”는 말로 ‘일부 승강장만이라도 화장실을 설치해 달라’는 노조의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비단 서울메트로 외에도 상당수 사용자들이 더 많은 매출을 위해, 더 높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노동자의 생리현상쯤은 무시해버리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계산대에 서서 일하는 유통업 노동자들은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제때 화장실을 가지 못해 방광염에 걸리고, 버스·택시 노동자들은 노상방뇨로 경범죄자가 돼버린다. 울산플랜트를 비롯해 수많은 건설노동자들이 ‘식당에서 밥 먹고, 화장실에서 똥 싸고 싶다’고 파업까지 벌이는 상황이다.
지난 6일 노동부는 건설노동자를 위한 화장실 설치를 법제화하는 ‘건설고용 개선에 관한 법률안(개정안)’의 후속입법을 내놨다. 공사 예정금액이 5천만원 이상이면 노동자들이 5분 이내 도달할 수 있는 거리에 화장실을 설치하도록 법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 500만원을 물도록 했다.
사용자들이 오죽했으면 ‘화장실’ 법안까지 만들어지는 상황에 이른 것일까? 배변의 욕구는 사용자든 노동자든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생리현상임을, 그리고 반드시 보장해야할 기본적인 인권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