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3.21 오마이뉴스]
과로사 22명의 기록… 몇 시간을 일해야 괜찮을까
[노동시간 개악안의 함정①] 60시간? 69시간? 더 많이 일하면서 건강할 수 없다
노동건강연대 정우준
윤석열 정부가 ‘주 최대 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을 발표했다. 여론의 반발로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를 지시했지만, 정부는 사회에 ‘얼마나 오래 일할 것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있다. 노동건강연대는 ‘노동시간 개악안’에 대해 더 건강한 노동을 위한 조건으로서의 노동시간을 논의하기 위해 긴급진단을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기자말] |
▲ 지난 9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열린 ‘노동시간 개악 저지 윤석열 정부 규탄 기자회견’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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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8일, 오전 7시 10분쯤 종로구 대형 빌딩 지하 사무실에서 40대 남성 A씨가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
노동건강연대가 <오마이뉴스>와 함께 매달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들의 언론보도를 모아 연재하는 ‘이달의 기업살인 – 3월’ 한 켠에 기재될 내용이다. 사망유형에 ‘알 수 없음’이라고 적힐 한 노동자의 죽음 뒤, 언론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유족 측은 A씨가 24시간씩 하는 당직 근무를 연속으로 하는 등 과로로 인해 사망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다른 사례도 있다. ‘이달의 기업살인 – 2월’에 보고된 사례다. 지난 2월 8일 새벽 3시 28분경 천안 쿠팡 목천물류센터에서 하루 6번씩 물류센터를 오가야 했던 60대 노동자가 급작스러운 뇌출혈로 1.2M에 높이에서 떨어져 사망했다. 그의 사망유형은 ‘떨어짐’으로 적혔지만 그의 부검 결과는 뇌출혈로 대표적인 ‘과로사’를 일으키는 질병이다.
‘이달의 기업살인 – 1월’엔 이런 사망도 기록돼 있다. 지난 1월 8일에도 이렇게 적혀있다. 인천 쿠팡물류센터에서 야간 근무를 하던 50대 남성이 새벽 5시 10분 화장실에서 심정지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됐다. 사망한 노동자는 새벽 4시까지 택배 분류업무를 하다 몸상태가 좋지 않아 조퇴한 상태였다. 그의 죽음도 ‘알 수 없음’으로 적혔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한 노동자의 죽음
최근 들어 윤석열 대통령을 필두로 정부 관계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더 많이 일을 시키려고’ 안달이 났다. 주69시간으로 표현되다가 최근 대통령이 ‘주60시간은 무리’라며 재검토를 지시했단다. 그런데 대통령실은 이를 두고 “가이드라인은 아니”라면서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 발언들의 공통 분모는 ‘더 많이 일하라’다. 이 말은 때론 ‘많이 일하는 대신 더 쉴 수 있다’며 노동자의 휴식과 휴가 그리고 건강권 보장이라는 말로 치장돼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그 수사 사이로 ‘알 수 없음’이라는 이름으로 기재된 노동자 사망 이면의 ‘심야 노동’ ‘더 긴 노동’ ‘스스로가 노동시간을 조절할 수 없는 사정’을 헤아려야 한다.
앞으로 누군가의 건강과 삶의 통제권이 주40시간, 주52시간, 주60시간, 주69시간 따위의 수치로 이야기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시간의 연장이 불러일으킬 결과 역시 예단할 수 없으나 ‘건강’과 ‘노동자 스스로가 시간을 통제할 수 없는 노동’이 될 공산이 크다.
더 많이 일하면서 건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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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오전 서울 중구 민주노총 회의실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주69시간 근로시간 개편안에 대해 찬성과 반대 의견을 묻는 조사판이 놓여있다. | |
ⓒ 유성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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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1, 2, 3월에 연이어 발생한 노동자 세 명의 죽음은 우리가 겪을 수 있는 ‘주69시간’ 혹은 ‘주 60시간’ 노동의 예고편일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더 많이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노동자들에게 더 긴 노동이 불러일으킨 안타까운 사례는 사실 남의 일이 아니다. 윤준병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7년부터 2021년 7월까지 총 5년간 1205명의 노동자가 정부가 인정한 ‘과로’로 사망했다. 정부가 승인하지 않았지만 알 수 없는 죽음에 담긴 ‘과로’ 이야기를 품은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매년 최소 500명의 노동자가 과로로 사망한다.
그래서 더 긴 노동, 회사의 사정에 맞춰 내 노동시간이 멋대로 바뀔 미래를 더 면밀하게, 더 많은 사람들이 확인해야 한다. 평상시 더 길게 일을 시키고, 노동자의 건강보다는 기업의 사정에 맞게 업무강도와 시간을 급격히 조정하며, 심야에 더 일을 시키려는 지금, 노동건강연대는 2022년 발생한 22명의 과로사 언론보도를 다시 정리한다.
휴식과 휴가의 필요는 그 일을 하는 노동자가 결정할 때 건강한 노동이 가능하다. 어떤 경우에도 더 많이 일하면서 건강할 수는 없다. 더 건강하게 일하려면 더 적게 일하면 된다. 아래 기록된 노동자들의 과로사를 보며, 다시 질문을 바꿔야 한다.
‘건강하게 일하려면 우리에게 몇 시간의 노동시간이 적정한가?’
2022년 언론보도된 ‘과로사’ 노동자
2022-01-18
인천 / 서인천우체국 소속 집배노동자 A(50대)씨가 집안에서 쓰러진 채 가족에게 발견됨.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는 설 명절을 앞두고 늘어난 배달 물량을 원인으로 지목함.
2022-01-21
대구 / 대구성서우체국 소속 집배노동자 A(40대)씨가 사망. 공공운수노조 전국민주우체국본부는 설 명절을 앞두고 늘어난 배달 물량을 원인으로 지목함.
2022-02-11
경기 수원 / 재해일시 : 2021-12-24 / 쿠팡 동탄물류센터에서 전산 업무를 하던 노동자 A(53)씨가 작업장에서 두통과 메스꺼움을 호소하며 쓰러진 뒤 뇌출혈 진단을 받음. 이후 회복하지 못하고 2월 11일 오전 사망.
2022-02-15
전북 전주 / 전주시청 소속 공무원 A(27)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됨. A씨는 정식 임용 전 시보 공무원으로, 올해 1월 첫 출근 이후 코로나19 방역 관련 업무를 담당하였음. A씨의 휴대전화에는 업무에 대한 어려움과 과로를 토로하는 메시지가 남아있던 것으로 알려짐.
2022-03-06
충남 / 8시경 /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의 대형 산불 지원 업무로 사망 전날까지 5일 연속 비상근무한 소방경 A(48)씨가 사망. A씨는 최근 2년 동안 한 달에 50시간 이상 초과 근무를 해온 것으로 드러남.
2022-04-08
충남 당진 / 11시경 /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연구원으로 10년간 일해온 노동자 A(40)씨가 자택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됨. 팀원 중 9명이 코로나19확진되어 사망 20일 전부터 A씨에게 업무가 과중된 상태였으며, 7일 오후5시 무렵 퇴근한 뒤 다음날 출근하지 않아 팀원이 자택을 찾아갔던 것으로 알려짐. 부검결과는 ‘뇌출혈’.
2022-04-24
충북 음성 / 01시경 / 생극면 소재 타일 제조업체에서 노동자 A(30대, 스리랑카 국적)씨가 야간근무 중 심장마비로 쓰러져 사망.
2022-05-01
광주 / 광주의 한 사립대학교 전임교수 A(40대)씨가 대학기본역량진단 추가 보고서 발표를 하루 앞두고 숨진 채 발견됨. 사인은 뇌출혈로 밝혀졌는데, 동료 교수들은 뇌출혈의 원인을 과로로 지목함.
2022-05-29
전북 전주 / 전주의 한 주민센터에서 지방선거 사전투표소 관리업무를 맡아 일하던 노동자 A(50대, 6급 공무원)씨가 뇌출혈로 사망. 행정민원팀장으로 일하던 A씨는 27일부터 구토 증세를 보였지만 계속 일했고, 29일 오전에 집에서 쓰러진 뒤 수술을 받았지만 사망한 것으로 알려짐.
2022-06-10
전북 전주 / 16시경 / 전북 전주 덕진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노동자 A(50대, 교사)씨가 교실에서 쓰러진 채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 부검 소견은 뇌출혈로 드러났으며, 전교조는 학교현장의 과도한 업무와 감정노동 스트레스를 원인으로 주장함.
2022-06-16
인천 부평 / 05시 10분경 / 씨제이대한통운 부평지사 삼산중앙대리점 소속의 택배노동자 A(48)씨가 14일 새벽 5시 30분경 집에서 출근 준비를 하다가 갑자기 쓰러진 뒤, 이틀 뒤인 16일 사망. 평소 지병이 없던 A씨가 오전 7시 30분부터 하루 최소 10시간 30분에서 최대 13시간 30분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고, 주로 엘리베이터가 없는 6층 아파트 배송을 도맡아 왔다는 점, 또 물량이 많아 당일 배송하지 못한 물건은 다음날 아침에 출근하면서 배송해온 점 등 유족의 증언을 바탕으로 과로사로 추정됨.
2022-06-22
울산 / 11시 50분경 / 5월 31일 오전 7시 50분경 울산중부소방서 당직실에서 쓰러진 뒤 동료들에게 발견되고, 뇌출혈 진단을 받고 의식이 없는 상태로 20일이 지난 22일 오전에 노동자 A(43,소방장)씨가 사망.
2022-06-23
인천 / 6시 58분경 / 노동자 A(54, 경위)씨가 자택 거실에 쓰러져 있는 것을 가족이 발견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심장마비로 사망. A씨는 20일 야간근무를 한 뒤 지구대 내 인력 등이 부족해 21일 야간근무를 자원했고, 22일 오전 9시에 퇴근한 후 집에서 휴식을 취한 후 23일 오전 8시에 출근할 예정이었음. 코로나19가 끝난 후 출동사례가 많아지고 휴가자도 발생하여 업무가 가중된 것으로 추정.
2022-06-26
세종 / 01시경 / 노동자 A(20대, 8급 공무원)씨가 자신의 집에서 쓰려져 숨진 채 발견됨. 유족 측은 A씨가 늦은 밤 퇴근하고,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이 잦았다며 최근 간부로부터 직원들이 보는 앞에서 질책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어 직장 내 괴롭힘이 의심됨.
2022-07-05
경북 문경 / 경남 문경시 유통축산과 기획예산실 감사팀장으로 일하던 노동자 A(54, 농업직 6급)씨가 퇴근 후 집에서 수면을 취하던 중 새벽에 위독한 상황이 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사망. 사인은 급성심정지이며, A씨의 지난 1년간 초과 근무시간이 600시간에 육박할 정도로 격무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됨.
2022-07-05
인천 계산 / 재해일시: 6월 28일 / 홈플러스 인천계산점 소속 노동자 A(50대)씨가 6월 28일 퇴근 후 자택에서 뇌출혈 증상을 보이며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 A씨는 온라인 배송 전용 물류센터에서 주로 근무하였으며, 지난달 말부터 온라인 물량과 매출이 증가하면서 기존 인력으로 늘어난 물량을 감당하기 어려웠다는 노동조합의 주장을 토대로 봤을 때 과로사 추정.
2022-07-14
충남 천안 / 08시경 / 전북 완주에서 진행된 사무관 임용 교육에 참가한 노동자 A(58, 충남 천안시 공무원)씨가 임용 교육 도중 돌연 사망. A씨는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교육을 마치고 14일 4일차 교육 시작 전 사무관 교육에 입소한 동기들과 산책을 하던 도중 쓰러짐.
2022-07-23
기타(알수없음) / 나 혼자만 레벨업’의 그림을 맡았던 노동자 A(37, 웹툰작가)씨가 평소 지병을 앓던 중 뇌출혈로 사망. 웹툰관계자들은 고강도장시간 노동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주장하고 있음
2022-07-24
서울 송파구 / 새벽 / 서울 아산병원에서 근무하던 노동자 A(간호사)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원내 응급실로 옮겨져 응급처치를 받았지만 수술이 불가능한 상황으로 인해 서울대병원으로 이송되었지만 끝내 사망.
2022-09-28
인천 부평구 / 재해발생: 20일 14시경 / 인천 부평구의 한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근무하는 노동자 A(50대, 조리실무원)씨가 쓰러져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던 중 심근경색으로 사망.
2022-11-25
충남 예산 / 재해일시 : 2022년 11월 25일 08시 30분경 / 예산군이 위탁운영하는 내포공공하수처리시설에서 관로업무를 담당하던 수탁업체 소속 노동자 A(49)씨가 당직 근무 중 뇌출혈 인해 숨진채 발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