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보다 예방 “…노사 모두 得
해럴드경제 2003/09/16
■노사 윈-윈 전략으로 극복=디트로이트 시티에서 자동차로 40분 정도 북쪽으로 달리면 워런이라는 한적한 거리에 인공호수를 중심으로 나지막 한 건물들이 평화롭게 늘어서 있는 GM의 기술연구센터가 시야에 들어온다.
호수 왼편의 A동 건물에 있는 인간공학실험실에 들어서면 갖가지 생산라인 모형을 앞에 두고 산재예방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이 여기저기 눈에 띈다.
인간공학실험실의 박 팍스 수석연구원은 “인간공학이란 한 마디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작업환경에서 최대의 능률을 올리기 위한 것”이라며 올해 한국의 노사협상에서 근골격계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한데 대해 미국 역시 처음에는 비슷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84년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노조 가입률이 급속히 하락하는 위기 의식에서 조합원을 재규합하는 타개책으로 “정부나 사용자 측에 근골격계 질환의 예방과 대책을 기대하기는 어렵고 오직 단체교섭을 통해서만 관철시킬 수 있다”고 이슈화함으로써 노사협상의 쟁점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UAW 소속 노조원은 지난 79년 150만명에 달해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지만 현재는 60만명 수준으로 줄었다.
그는 “처음에는 노조의 압력전술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지난 십 수년간에 걸쳐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예방과 조기진단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자동차 제조기술의 진보를 가속화시키는 촉매로 작용했다”고 그는 덧붙였다.
같은 연구소의 존 밀 박사는 “조업현장에서 근골격계 질환이 급증할 경우 급증하는 의료비용과 작업일수 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물론 자동차 품질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예방노력은 노사 모두에 득이 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 조립라인은 차대를 머리 위에 두고 반복 작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었으나 인체공학을 적용해 차대를 옆으로 세워 허리나 어깨 높이에서 작업할 수 있도록 설계를 변경한 후 불량률이나 리콜 빈도를 크게 낮출 수 있었다고 그는 설명했다.
■예방과 조기진단이 중요= 때마침 디트로이트에서는 지난 99년 이후 4년 만에 빅3와 UAW 간 단체협약 갱신을 위한 막바지 협상이 전개되고 있지만 근골격계 질환을 둘러싼 노조원들의 집단 요양신청과 같은 실력 행사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사측은 “과도한 헬스케어(hea lth care) 비용 부담이 외국업체에 비해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있다”며 의료혜택 축소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조 측은 일자리를 희생해서라도 질 높은 의료건강 혜택을 고수하려는 수세적 입장이다.
빅3를 포함한 미국 자동차업계의 의료건강 부담액은 지난해 92억달러로 전년보다 12%나 급증,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죽음의 세금(Death tax)’ 으로 불리고 있다.
OSHA의 엘리노 질 과장은 “일부 기업이 비용증가의 원인을 조사한 결과, 의료비용 부담 증가의 상당부분이 근골격계 질환의 급증에 따른 것으로 밝혀졌다”며 “많은 기업이 인간공학 전문가들을 채용하는 한편 고가의 의료서비스에 대해서는 일부 비용을 본인 부담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OSHA는 지난 95년부터 5년간에 걸쳐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된 산재예방 표준안 (Ergonomics Standard) 제정을 주도해왔다.
OSHA에 따르면 미국 산업계의 근골격계 발생환자는 180만명에 달하며 매년 60만명 정도가 일시적 또는 영구히 생산현장을 떠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OSHA는 지난 2000년 산재예방 표준안을 최종 확정, 법률안을 제출했으나 부시 행정부가 기업부담이 과도하다는 이유로 반대해 폐지됐으며 그 이후 수정보완 작업을 거치고 있다.
OSHA 산하 연수원에서 안전교육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제니퍼 밀러 원장은 “표준안을 시행할 경우 기업은 연간 45억달러를 추가로 부담해야 하지만 의료비용과 보상비용 절감액은 9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예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산업안전정보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캐나다 산업안전보건 정보센터의 P. K. 아베이턴가 부소장은 근골격계 질환과 관련된 비용부담 문제에 대해 미국의 한 연구결과를 인용해 “작업현장의 인체공학적 설계나 반복적인 작업환경 개선에 1달러를 투자하면 17.8배의 투자효과를 내며 근골격계 질환 발생 확률을 3분의 1로 낮출 수 있다”며 “장기적으로는 예방노력이 치료보다 더욱 큰 효과를 지닌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