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기업들, 노동자 건강엔 ‘불통’
이상윤/ ‘건강과 대안’ 상임연구원·노동건강연대 사무국장 maxime68@naver.com
일터의 건강나침반 /
휴대전화는 현대인들에게 필수품이 된 지 오래다. 생산량도 엄청나 2007년 한해에만 1초에 36개의 휴대전화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세계에서 5대 기업이 이런 휴대전화 시장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노키아, 삼성,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엘지전자가 그 기업들이다. 이 기업들은 중국, 인도, 타이, 필리핀 등 아시아 국가의 공장에 하청을 줘 대부분의 부품을 생산한다.
최근 휴대전화의 전자파가 건강에 나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돼 관심을 끌었다. 문제는 휴대전화 사용자뿐 아니라 생산자인 노동자들의 건강도 위협한다는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반도체나 전자산업은 ‘클린산업’으로 불린다. 하지만 이는 이미지가 그럴 뿐이다. 실제로는 부품 생산, 조립, 완성품의 생산에 이르기까지 휴대전화 생산 과정에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 중금속, 유기용제가 쓰인다. 적절히 관리되지 않으면 이런 물질들이 노동자 건강을 해칠 수 있음은 두말할 필요 없는 사실이다. 실제로 현재 논란 중에 있지만 이 산업 노동자들이 암에 잘 걸리고 유산을 경험하는 횟수가 많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최근 네덜란드와 스웨덴의 초국적 기업 감시 단체가 보고서 하나를 펴냈다. 이는 5개 휴대전화 기업의 부품을 생산하는 중국과 필리핀 하청 공장의 노동 실태에 대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보면 이 공장 노동자들은 생활임금에 못 미치는 저임금, 하루 12시간이 넘는 장시간 노동, 부적절한 환기 장치 및 보호구 지급 등의 조건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전화 부품 생산 공정에는 여러 가지 화학물질과 중금속이 쓰이기 때문에 적절한 환기 장치 설치와 보호구 착용이 중요하다. 그런데 보호구가 지급되더라도 생산 시간에 쫓겨 이를 제대로 착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또 오랜 시간 일하고도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업무 중에 졸거나 시간을 놓쳤다는 이유로 임금이 깎인 이들도 흔했다.
5대 휴대전화 기업은 모두 자체적으로 인권과 노동권을 존중하는 공장 운영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이 운영 기준은 하청 공장에도 적용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이런 자체 기준은 현장에서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문서뿐인 기준임이 드러난 것이다. 이 보고서를 쓴 이들은 자신들의 조사 결과에 근거해 각 회사에 이에 대한 시정을 요구했다. 노키아, 모토롤라, 소니에릭슨 등은 몇 가지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보고서 내용을 참조해 사실을 확인하고 시정 조처하겠다고 응답했다. 한국 기업인 삼성과 엘지전자만 유독 아무런 응답을 하지 않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자국 노동자, 직접 고용 노동자에 대한 책임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기업에 타국 노동자, 하청 노동자 고용과 노동에 대한 책임까지 묻는 것이 최근의 추세다. 한국 기업도 이러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