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노동자와 휴가
7일의 휴가에 감추어진 진실
유 성 규 / 노동건강연대 편집위원장
1. 들어가며
여름이다. 매스컴은 이맘때쯤이면 유럽 노동자들의 여름휴가 사용 실태를 소개할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미미한 휴가 사용 실태를 꼬집으면서 말이다. 물론, TV나 신문에서 흘러나오는 이야기가 맞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1년을 통틀어 평균 7일의 휴가만을 사용하고 있을 뿐이다.
이 반면에, 미주, 유럽 지역의 노동자들은 여름에 2~4주간의 장기 휴가를 사용하고 있고, 연차휴가 사용률이 80~100%에 육박한다. 국제 기준 역시 노동자가 6개월 혹은 1년 근무 시 3~4주 이상의 휴가를 부여하도록 하고, 2주 이상의 장기 휴가 사용을 보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대부분의 독자들은 우리나라 노동법의 휴가 규정이 무언가 부족하여 이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이는 노동법상 휴가 규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은 아니다. 노동자들이 법에서 보장하는 최소한의 휴가조차 사용하지 못하는 진짜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2. 근로기준법상 휴가 규정은?
노동법 가운데 노동자의 휴가 사용권을 규정하고 있는 법률은 근로기준법이다. 근로기준법 제60조에 따르면, 1년간 80% 이상 출근한 노동자는 그 다음해 1년간 15일의 휴가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근속 1년 미만인 노동자에게는 휴가가 없을까? 근속 1년 미만인 노동자도 1개월 개근시 1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다만, 그 휴가사용일수는 그 다음해 휴가일수 15일에서 차감된다.
연차휴가 일수는 근속연수가 길어질수록 늘어난다. 3년 이상 근무한 노동자는 2년마다 1일씩 휴가가 가산된다. 최초 2년 동안에 15일, 3년차에 15일, 4년차에 16일, 5년차에 16일, 6년차에 17일과 같이 휴가일수가 해마다 증가되고, 휴가일수가 총 25일에 이르면 휴가일수는 더 이상 가산되지 않는다. 법률적으로만 보자면, 우리나라 노동자도 최대 25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 휴가일수에는 주휴일이 포함되지 않으므로, 주 5일제 사업장에 근무하는 노동자가 25일의 휴가를 모두 사용한다면, 최소 33일의 휴가를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다.
한 달 동안의 휴가를 자유로이 사용할 수 있다니. 유럽에서나 들어봄직한 꿈같은 이야기이다. 그렇다. 이는 꿈에 불과하다. 현실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평균 휴가일수는 최소 휴가일수 15일에 턱 없이 못 미치는 7일에 불과하다. ‘법률과 현실’이 ‘꿈과 현실’처럼 괴리되어 있는 것이다.
혹시 법률상 강제규정이 약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현행 근로기준법은 노동자가 자신이 원하는 시기에 자유로이 휴가를 사용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고, 사용자가 그 사용권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법률상 큰 문제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왜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단 7일의 휴가만을 사용하는 것일까?
3. 7일의 휴가에 감추어진 진실
가. 근로기준법 밖의 사람들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노동법하면 근로기준법을 떠올리고, 누구나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사용자들이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을 뿐이라고,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차마 요구하지 못할 뿐이라고 위안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근로기준법이 모든 노동자에게 적용된다는 것은 착각이다. 근로기준법이 애당초 보호 대상으로 삼지 않는 노동자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억울하게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든 노동자라고 인정하지만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실상은 이렇다. 근로기준법은 원칙적으로 5명 이상의 노동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에만 적용되며, 5명 미만 사업장에는 일부 근로기준법 조항이 예외적으로 적용될 뿐이다. 4인 미만 사업장에 적용되지 않는 주요 근로기준법 조항에는 ‘해고 금지 및 경영상 해고 금지 조항, 휴업수당, 근로시간 관련 조항들, 생리휴가, 취업규칙, 기숙사 조항, 생리휴가, 그리고 연차휴가 등’이 있다. 이 처럼, 5인 미만 사업장에는 대부분의 근로기준법 조항들이 적용되지 않는다. 연차휴가도 그 대표적인 조항들 중 하나이다.
통계청이 올해 7월에 발표한 고용동향 조사 결과에 따르면, 5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1,010만 6000명으로 집계됐다. 결국, 1,000만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의 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마어마한 숫자의 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 밖에서 일하고 있으니, 평균 7일의 휴가 사용일수도 대단한 수치인 것이다.
지난 6월 28일, 유성기업 서울사무소 앞에서 집회 중인
금속노조 조합원들 (출처: 민중언론 참세상 2012.06.29)
나. 휴가를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
문화체육관광부가 2010년 국민 여가 활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소득 100만원 미만의 저소득자 가운데 2/3인 67.7%가 1년 동안 단 하루의 여름휴가나 연차 휴가도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월 소득 100~200만원 소득자의 절반 가량도 여름휴가나 연차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통계청에서 2011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월 소득 200만 원 미만의 소득층의 70% 이상이 경제적 부담 때문에 여가 활동을 제대로 즐길 수 없다고 답변하였다. 결국, 문제는 돈이다. 휴가도 돈이 있어야 꿈꿀 수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 역시 휴가를 꿈꾸지 못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비정규직법이라 불리는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정규직 노동자들과 동일하게 휴가 사용권이 부여된다. 그러나 실제 현실은 법률과는 무관하게 돌아간다. 고용 자체가 불안한 상황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휴가’라는 말을 꺼내기란 매우 어렵다. 이 때문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휴가를 떠난 자리를 메우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지난 1분기 정규직 노동자는 89%가 유급휴가를 받았지만, 계약직을 포함해 휴가를 받은 비정규직 노동자는 23%에 불과하였다.
결국, 휴가 사용도 경제적 여건이 뒷받침되고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들만의 특권인 것이다. 하루만 쉬더라도 일자리를 위협받고, 하루치 일당이 빠지면 생계가 흔들거리는 이들에게, ‘휴가’란 꿈도 꿔서는 안 되는 사치일 뿐이다.
다. 휴가를 사고 파는 사람들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노동자가 연차휴가를 모두 사용하지 못했을 경우, 그 노동자는 미사용 휴가일수에 대한 수당을 사용자에게 요구할 수 있다. 소위 ‘연차수당’이다. 되짚어 생각해 보면, 연차수당은 아주 재미있는 개념이다. 사용자가 휴가 사용권을 노동자에게서 돈으로 사는 것이니 말이다.
노동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휴가를 아끼고 아껴서 연말에 돈으로 받고자 한다. 나날이 오르는 생활비와 교육비에 허덕이면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휴가조차 반납하고, 이를 돈으로 바꾸려는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그러나 기계조차도 쉬지 않고 돌리면 고장이 나게 마련이다. OECD 최장 근로시간을 자랑하는 노동자들이 휴가조차도 돈으로 바꾸려는 현실을 바라보자니, 사람들이 피를 팔아 빵과 우유를 사먹던 과거 매혈(賣血)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나마, 사용자가 연차수당을 지급하면 다행이다. 근로기준법에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란 것이 신설되면서,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노동을 제공하는 일이 다반사로 벌어지고 있다. 연차휴가 사용촉진제도란 사용자가 일정한 절차를 거쳐 노동자에게 휴가 사용을 촉진하였음에도, 그 노동자가 휴가를 사용하지 않으면, 연차수당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제도이다.
정부는 시행 초기에 노동자의 휴가 사용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기 위해 이 제도를 만들었노라 선전하였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의 생각과 다르게 돌아가고 있다. (진정 다른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현실은 이렇다. 사용자는 형식적으로 근로기준법이 정한 절차대로 휴가 사용을 촉진한다. 물론 노동자는 사용자의 눈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휴가 사용을 포기하고 근무를 한다. 그러면, 사용자는 휴가를 사용하지 못한 책임을 노동자에게 떠넘기며 자신은 법에 따라 연차수당을 지급할 수 없노라 주장한다. 사람들의 피를 계속 뽑으면서도 ‘오지 말라’고 사람들에게 이미 말했으니 돈을 줄 이유가 없다고 강변하는 현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정당성을 논하는 것은 차치하고서라도, 대가라도 제대로 달라고 요구해야 하는 작금의 현실이 실로 안타깝다.
4. 결론을 대신하여
7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진실은 초라하기 이를 데 없다. 7일의 휴가조차 논할 수 없는 암울한 현실, 그 뒤에서 숨죽이고 있는 목소리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노동법에서 버림받고 휴가 사용권 자체를 박탈당한 사람들, 생존을 위해 휴가조차 꿈꿀 수 없는 사람들, 휴가를 어떻게든 돈으로 바꾸려고 줄선 사람들… 아마도 독자들 자신일 수도 있고, 독자들이 여름 휴가지를 오가며 마주친 사람들일 수도 있다. 분주했던 여름휴가를 정리하면서 한번쯤 감추어진 진실들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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