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량 쇠덩어리 안의 고립, 1인승무가 공황장애를 부른다
[특별기획]신종직업병 ‘공황장애’를 진단한다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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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하은 기자

도시철도 5~8호선을 운전하는 기관사들이 신종 직업병 공황장애, 적응장애, 불안장애 등 정신건강권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850여 기관사 중 2명이 사망하고 10여명이 질환을 앓고 있으며 115명이 전문의 검진대상자라면 누가 보아도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이다.

개화산 기관사들이 이러한 비정상적 상황의 요인으로 주되게 꼽는 것은 1인 승무제도로 인한 과도한 압박감이다. 서울지하철의 1인 승무와 달리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평균 5시간의 지하터널을 혼자서 운행한다. 열차 운행과 차량 사고시 대처를 온전히 혼자 결정하는 것이다.

한 조합원은 “5시간을 혼자 다니다보면 넋을 놓고 가는데 습관화되었다. 몸과 마음이 분리가 기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 같다”고 이러한 강박감을 토로했다.

눈앞에서 사람이 떨어지고 결국 그 사람을 뻔히 보면서 칠 수밖에 없는 상황. 그런 공황상태에서 혼자 어두운 선로에서 손전등을 밝히며 기어 들어가 치인 사람을 찾고 선로 밖으로 꺼내고 시신 중 일부가 떨어져 나간 상태라면 나머지 일부를 찾아 조치를 하고 다시 교대 장소까지 혼자 운전을 하고 가야한다. 또한 혼자서 사령에 보고하고 안내방송하고 또 목격자를 찾아서 진술서를 받아야 한다. 만약 조치가 늦어서 열차가 많이 지연되게 되면 문책을 받는다. 혹 사람이 떨어질 때 제동을 늦게 취급하거나 조치가 미숙하면 민·형사상 책임도 혼자 져야 한다. 그리고 의도는 없었다해도 도덕적으로 사람을 치었다는 죄의식을 혼자 떠안는다

한 조합원은 “1인 승무가 주는 강박은 군대가서 전방에서 혼자 보초서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된다. 하루에 만나는 사람은 서울시내에서 가장 많겠지만 우리는 8량의 쇠덩어리 안에 혼자 갇혀 있는 것 같은 고립감을 느낀다”고 표현했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은 13.5%가 거의 매일 출입문 사고를 경험한다. 전동차 고장도 90%이상이 적어도 한번은 겪어보았고, 사상사고(운전하며 승객을 치는 사고)를 경험한 사람은 16.4%에 이른다. 이런 잦은 사고 속에서 사고가 나면 모든 처리와 불이익을 혼자 부담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차를 타는 순간부터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한다.

출입문 고장이나 출입문에 승객이 끼는 사고의 경우, 사령에 일단 알기 쉽게 보고해야 하며, 경과과정을 승무일지에 기록해야한다. 다시 객실방송을 이용하여 승객들의 동요를 방지해야 하며, 운전실에서 고장을 확인하고, 사령에 고장 확인결과를 보고한다. 그리고 수시로 승객방송을 하며 사고 현장까지(길게는 160m) 뛰어 해결하거나 해결 불가능할 때는 다시 운전실로 이동하여 검사원 등을 요청하고 불안전한 상태에서 응급조치를 하며 적어도 10분내에 현장을 출발해야 한다.

1인 승무이다 보니 승하차 상태를 흑백 CCTV로만 확인할 수밖에 없다. 약 1m만 출발해도 뒤쪽 160m의 승강장에서 무슨 일이 발생하는지 전혀 알 수 없어 늘 불길한 기분으로 운전을 하게 된다. 곡선 승강장에서는 CCTV상에서도 잘 보이지 않는 사공간이 존재한다. 다소 의심스런 상황에서 순간 판단하고 그냥 출발하고 나면 계속 뒷덜미가 당긴다. 두 정거장 정도 지날 때까지 사령과 연결된 전화에 모든 신경을 쓰게된다. 혹시 그 사이에 사령에서 본인의 열차를 부르게 되면 그것은 뒤에서 승객사고가 난 것이기 때문이다.

한 기관사는 “한 역 한 역 지날 때마다 승객에서 결제 받는 마음이다. 연락이 없으면 결제 받았구나 안도한다”고 토로했다.

그리고 만약 의심스런 상황이어서 비상정차를 하거나 시간을 지체한 뒤 사고가 아니면 기관사 속도조절 잘못으로 몰린다. 때문에 혹시나 하는 두려움을 감수하며 운전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특히 러시아워 때는 승강장에 승객이 워낙 많아 역간 통과 시간인 2분마다 초긴장 상태가 반복된다.

또한 시야 폭이 협소하고 어두운 지하터널 속을 혼자서 달리는 것은 그 자체로서 공포일 수 있으며 스트레스의 원인이 된다. 지하터널에서 약 5시간 가량 그것도 컴컴한 터널로만 이루어진 도심 지하철(도시철도는 본선구간이 99% 터널이다)을 날마다 밤낮 구분 없이 운전한다. 운전실의 여유공간이 좁아 심리적으로 위축되며 갑갑함, 고립된 느낌을 항상 가지고 간다. 열차가 어두컴컴한 형광등 불빛 속을 빠른 속도로 스쳐 지나가다 보면 앞에서 운전하는 기관사의 눈에서는 눈물이 나며 극도의 육체적 정신적 피로감을 느낄 뿐 아니라 장시간 운전을 하면 멍해지기도 한다.

이외에도 기관사들은 분초를 다투는 업무일정에 묶여야 한다. 다이아라고 불리는 일정표는 자신조차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각자 달라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운행수첩을 확인해야 한다. 또한 기관사들의 교번제 근무라는 것은 기관사 교번 근무표에 의해서 출퇴근 시간이 정해지고 교대순서가 정해지는 독특한 근무형태로 생활이 불규칙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대부분의 기관사들은 수면장애를 겪고 있다. 설문에 의하면 출근시간이 되면 87.9%가 시간에 대한 압박감이 심해진다고 한다. 개화산의 경우 정상운행 인력보다 7명이 부족한 상황이어서 휴일에도 언제든 공사로부터 연락이 올지 모르는 대기상태에 있어야 한다. 거기다 승객이 민원을 넣기만 하면 상황은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기관사들의 잘못으로 몰아 부치고 경위서를 쓸 것을 강요하는 공사의 압박도 기관사에게 스트레스를 주고있다.

또한 레일과 열차 휠과 마찰로 발생하는 강렬한 고주파의 금속음과 터널 벽면에 반사되어 온 소음을 그대로 받아들여야하고 미세 먼지, 금속성 등 각종 분진, 흄 등을 여과 없이 마시며 근무한다.

이상의 요인들은 도시철도공사의 치밀한 구조조정 전략에 따른 만성적 인력부족, 고도의 현장통제가 낳은 필연적 결과이다. 도시철도 기관사들이 자신의 건강권을 지키고 안전하게 승객을 수송하기 위해서는 1인 승무제도가 2인 승무로 전환되고 적정한 휴일과 휴게시간 그리고 수면 시간이 확보되는 근무형태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리고 전반적인 노동조건이 개선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조속한 인력 충원과 현장통제 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