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비정규직 입을 열다”
[레이버투데이 2006-05-08 10:39]
“1년에 280일만 일할 수 있도록 이상한 방식으로 계약돼 12월만 되면 다른 일자리를 임시로 알아봐야 하고, 10년을 넘게 일을 하고도 해마다 재계약되면서 초임만을 받아야 하는 지자체 비정규 노동자들은 1년 단위 계약직 노동자들입니다.”
울산지자체비정규노조 조합원들의 하소연이다.
지난 4일 오후2시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지방자치단체 비정규노동자 증언대회’에서는 차별받는 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실태가 폭로됐다.
<자료사진=울산지자체비정규노조>
10년 넘게 일하고도 매해 재계약…매해 초임
지자체 직접고용 비정규직인 울산지자체비정규노조는 시청과 구청에 소속돼 사무보조, 전산보조, 부녀복지요원, 청사청소인부, 수로원, 하수관리, 무허가단속 등의 일을 하는 일용직 노동자들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임금도 일당제로 부서재료비(관공서 재료비 명목의 예산으로 고용돼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의 경우 한달에 70만원, 상근직과 상용직은 일당 2만5천원~3만9,150월으로 월 110만원을 넘지 않고 있다”며 “더구나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때문에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연월차는 고사하고, 아파도 병원 한번 편히 가지 못하고, 집안 경조사 휴가도 없어 온갖 눈치를 보며 가야 하는 것이 저희들의 서글픈 현실”이라고 밝혔다.
또 “2004년 10월에 노조를 만들고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자치단체에 단체협상과 임급협상을 해오고 있지만 자치단체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들을 들어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그런 가운데 동구청과 북구청에서는 단체협상이 체결됐지만 남구청, 중구청, 시청은 아직도 협상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지 않고 시간만 흘러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차별받고 소외받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자치단체는 시민의 권리와 이익도 제대로 대변할 수 없다”며 “사회의 낮은 목소리가 좀더 크고 멀리 들릴 수 있는, 진정 시민 속에 있는, 그런 지방자치시대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시민들의 힘으로 잘못된 관행과 태도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료사진=전국민주연합노조 안양지부>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임금삭감 및 해고 잇따라
지자체 간접고용 비정규직들의 목소리도 잇따랐다. 전국민주연합노조(구 경기도노조) 속초지부는 속초시청 소속 환경미화원으로 고용됐지만 속초시청의 일방적인 방침에 따라 속초시 시설관리공단으로 민간위탁 됐다. 노조는 “이 과정에서 본인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적을 강요받았고, 임금삭감도 발생했고, 환경미화원들이 반발하자 시청은 노동자들의 도장을 도용하고, 노동부, 검찰, 경찰 합동 공안대책협의회까지 개최하는 등 입체적인 탄압에 나섰다”고 폭로했다.
광주전남공공서비스노조 수진환경지회도 직접고용에서 간접고용으로 바뀐 경우로 상황은 마찬가지이다. 광주시 서구청의 폐기물 처리 업무를 담당하던 노동자들은 구청의 일방적인 방침에 따라 ‘수진환경(주)’이라는 민간업체에 위탁됐다. 노조는 “민간위탁 업무를 수탁한 업자는 구청의 담당국장과 친인척이었고, 담당국장은 퇴직 뒤에도 민간위탁 업체를 통해 이권을 유지했다”고 폭로했다. 또 민간위탁 뒤 처리물량이 늘어나 2~3배 이상의 노동강도 강화와 인원부족 등으로 산재발생율이 증가했음에도 산재교육은 실시되지 않았고, 임금삭감도 뒤따랐다.
전국민주연합노조 옥천환경지부도 2000년 6월 군 직영에서 민간업체로 위탁됐다. 당시 군은 민간위탁이 돼도 고용보장과 임금 등을 보장해준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기존 업체의 계약기간이 끝나고 새로운 업자를 선정할 때가 되자, 예산절감을 이유로 입찰단가가 삭감하면서 노동자들의 임금도 기존 임금의 60%로 삭감됐다. 또 43명의 환경미화원 중 새로운 업자가 22명에 대해 고용승계를 거부하면서 이들이 모두 해고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동자는 365일 일하고 저임금…민간업체는 부당이익
<자료사진=전국민주연합노조 파주지부>
파주시 환경미화원들로 구성된 전국민주연합노조 파주지부도 파주시가 위탁한 민간업체에 간접고용돼 있다. 노조는 “민간위탁업자는 가짜 환경미화원을 장부에 올리는 방식으로 수천만원의 부당이익을 취하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수입이 줄어 사업이 어렵다’면서 환경미화원을 정리해고 하고 있다”며 “관리감독 의무가 있는 파주시청은 이런 상황을 수수방관하고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국민주연합노조 안양지부도 마찬가지로 가짜 환경미화원이 장부에 올라오고, 재료비와 유류비를 뻥튀기 하는 방식으로 민간위탁업체가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의 혈세를 낭비해 왔고, 이의 시정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등 탄압해 왔다.
“1년 365일 하루도 빼지 않고 쓰레기를 치워야했습니다. 가족들과 외식 한번, 나들이 한번 가본 적이 없습니다. 딸자식 시집가는 날도 쓰레기를 치우고 헐레벌떡 냄새나는 옷을 갈아입고 가야 했습니다. 아버님 장례를 치른 다음날도 어김없이 나와서 쓰레기를 치워야 했습니다.” 이는 대구경북공공서비스노조 칠곡환경지회의 하소연이다.
1년 365일을 일했지만 휴일수당이나 초과근무수당은 받아본 적이 없다. 이에 노동자들이 노조를 만들자 민간위탁업체는 위장폐업을 하고, 12명의 환경미화원들은 거리로 내몰렸다. 그럼에도 칠곡군은 노조와 대화에도 임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민간위탁 재직영화 및 근로조건계약준수 프로그램 등 시행해야
이에 민주노동당 심재옥 서울시 의원은 비정규직노동자 권리보장을 위한 지방자치단체의 정책 대안을 제시했다. 심 의원은 △계약준수 프로그램을 통한 공공부문 계약 사업장의 저임금 해소 △기존 산업국을 산업노동국으로 재편하고 지역경제고용위원회의 설치 △복지, 문화, 교육 등 공공 서비스를 확대해 일자리 창출 효과를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 의원은 “현행 민간위탁 및 용역사무 중 청소용역과 환경미화 등의 단순용역은 직영화하고, 위탁용역, 물품구매, 공사발주 시 적정임금 보장 및 노동조건을 개선키 위한 협정을 계약준수 프로그램을 통해 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민주노동당 이해삼 비정규철폐운동본부장은 “민주노동당 5·31 지방선거 노동공약은 지자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를 함께 담아 만들어졌다”며 “지방자치단체의 비정규직, 민간위탁 남용을 규제하는 것에서 시작해, 지역에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민주노동당과 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공동 정책대안으로 △지자체의 일상적 업무에 대한 민간위탁 (재)직영화 및 지자체의 각종 사업 시행 시 입찰업체의 고용안정성과 근로조건 등을 평가하는 근로조건계약준수 프로그램 시행 △각계각층이 참여하는 지역경제고용위원회 구성 △지역 공공서비스 시설(복지, 의료, 교육, 환경, 문화 시설) 확충 및 새 일자리 창출 △지방자치단체 및 산하기관 비정규직 중 상시·고정 업무 비정규직 정규직화 △지자체 및 산하기관, 지자체의 직·간접 고용사업장에 대한 최저임금을 전체노동자 평균임금의 50%로 현실화 등을 제시했다.
김태진 공공연맹 부위원장은 지자체 비정규직노동자 권리쟁취를 위한 공동투쟁을 제안했다. 김 부위원장은 “민주노총 공공연맹 소속의 지방자치단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정당한 권리쟁취를 위해 행정자치부와 각 지방자치단체를 상대로 민간위탁 중단, 고용안정 보장을 요구하는 투쟁을 전개하려 한다”며 “오는 18일 전국 지자체 비정규직노동자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7월 총파업을 통해 전국의 쓰레기청소, 공공시설보수 업무를 일시에 중단하는 일이 있더라도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이에 공공연맹은 지방자치단체와 직접 교섭을 통한 협약안 체결을 목표로 △지방자치단체가 모범 사용자로서 정규직 고용, 양질의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 △중간착취와 비리를 불러오는 공공서비스업무 민간위탁과 외주용역 확산 중단 △공공성 강화, 비정규직 노동자 권리 보장을 위해 노동자, 시민의 참여 보장 등을 요구할 계획이다.
한편, 이번 ‘지방자치단체 비정규노동자 증언대회’는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공공연맹 주최로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의 비정규직 남용 및 차별 실태를 알려내기 위해 개최됐다.
임지혜 sagesse@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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